"5개월 째 복지관 휴관, 제 딸은 지금 눈만 깜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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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남장가센터 조회 2,785회 작성일 20-07-02 18:38본문
[코로나19의 그림자] 발달장애 딸 둔 엄마의 눈물 "일본여행도 갔는데, 지금은 눈만 깜빡"
▲ 2015년,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김유진씨는 특수교사와 함께 일본을 다녀왔다. ⓒ 김신애
"일주일에 한 두 번, 복지관에서 물리치료를 받았었는데 코로나19로 지난 2월 초부터 복지관이 문을 닫았어요. 그 이후 모든 치료가 중단됐죠. 지금은 아이 몸에 근육이 없다고 보면 돼요. 겨우 눈만 깜빡이는 수준이에요."
김신애씨의 딸, 스물 넷 김유진씨는 중증 발달장애인이다. 유진씨는 5살 때 지적장애 1급, 뇌병변 장애 1급 진단을 받았다. 뇌염에 걸린 게 원인이었다. 이후 유진씨는 지능지수가 20 미만이라 지능 수준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다. 김신애씨는 지난 6월 29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능이 5세도 안 되는 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라고 유진씨의 상태를 설명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6월 30일 0시 기준으로 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44명이라고 발표했다. 누적인원은 1만 2800명. 지난주(26일) 서울 관악구 소재 왕성교회 등 교회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이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난 6월 28일 코로나19 유행 정도에 따라 방역 강도를 달리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1~3단계 실행방안을 발표했다. 방역 관리체계 재정비에 나선 셈이다. 현재 수준은 일상적인 사회·경제활동이 가능한 1단계다. 신규 확진자 수가 2주간 평균 50~100명이 되는 2단계로 전환하면, 채용 시험이나 결혼식, 장례식 등 실내에서 50명 이상 모이는 행사가 제한된다.
소통이 끊겼다
▲ 코로나19로 복지센터가 문을 닫은지 5개월이 지났다. 발달장애인 김유진씨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 보낸다. ⓒ 김신애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던 2월 초, 복지관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코로나19감염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장애인들은 복지관 휴관을 '사회적 사망선고'처럼 받아들였다. 장애를 위한 별다른 치료법이 없어 복지관 프로그램에 기대는 발달장애인의 경우는 더 그랬다. 발달장애인에게는 복지관에서 하는 언어치료 등의 프로그램을 하는 게 정기적인 사회활동의 전부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5개월여 이어지며 복지관의 문은 다시 열리지 않고 있다. 유진씨가 다니던 경북 울진의 장애인복지관도 지난 2월부터 운영이 중단됐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유진씨가 받던 물리치료·언어치료도 끊겼다. 매주 활동지원사와 찾던 도서관도 이용할 수 없게 됐다. 유진씨의 사회적 접촉이 모두 끊겼다.
"발달장애인에게 복지관은 유일한 숨구멍이에요, 복지관에 가서 30분 물리치료를 받고, 언어치료사와 눈을 맞추고 감각을 깨우는 게 유진이에게는 절대적인 시간이에요. 사회와 접촉하고 소통하는 시간이죠. 5개월 동안 유진이는 정말 누워서 숨만 쉬는 거예요."
올 초 들이닥친 '코로나19'는 유진씨의 사회적 삶을 앗아갔다. 유진씨는 지능수준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결과를 받았지만, 특수학교가 없는 울진에서 일반 초·중·고를 문제없이 졸업했다. 특수교사를 배정받아 도움반에서 수업도 들었다. 한 문장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운 수준이지만, 학교 수련회도 참여하고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일본을 가기도 했다.
유진씨는 2015년, 3박 4일 일본으로 '현장 체험학습'을 다녀왔다. 유진씨를 돕기 위해 2명의 특수교사가 투입됐다. 유진씨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시간에 맞춰 위와 연결된 관을 통해 특수 분유를 넣어줬다. 아무 사고 없이 유진씨는 해외여행을 마쳤다.
"유진이는 입으로 물 한 방울도 못 먹어요. 위에 구멍을 뚫어서 호스관을 연결해 특수 분유를 먹어요. 몸을 못 가누니까 휠체어에 누워서 있어야 해요. 그래도 초·중·고 학교생활을 했어요. 특수교사의 도움을 받고 학교의 지원을 받아서 가능했던 일이에요. 정책·시스템만 있다면 유진이도 사회에서 격리되지 않고 지낼 수 있어요."
김신애씨는 결국, 발달장애인의 사회화는 정책과 연결되어 있다고 봤다. 정부가 어떤 법과 제도로 이들을 보호하느냐에 따라 장애인 삶의 질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감염병 앞에서 장애인은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다. 복지관이 휴관할 때 그곳에서 치료를 받던 장애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는 없었다. 울진군청에 장애인들의 상황을 전해도 "지금으로서는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없다"라는 답만 돌아왔다.
"유진이는 뇌전증지속증이 있어요. 입에 거품을 물고 발작을 하는 거죠. 경기를 일으킨다고 보면 되는데, 코로나19 전에도 유진이는 발작을 했어요. 일주일에 10번 한 적도 있었죠. 학교를 다니고 복지관을 다닐 땐 발작을 해도 응급실까지 갈 정도는 아니었어요. 요즘은 위급상황이 늘어나고 있어요. 정확하게 코로나19 이후부터 발작으로 한 달에 한 번은 응급실에 실려가요."
김신애씨는 유진씨가 코로나19 이후 눈에 띄게 퇴화하고 있다고 했다. 유진씨의 발작 수준은 더 심각해졌고, 응급상황은 더 잦아졌다. 의사도 별다른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김신애씨는 "복지관에서 여러 치료를 통해 뇌에 자극을 줬던 게 중단되니까 발작이 심각해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언어치료사가 '김유진', 이름을 부르면 얼굴을 돌리고 눈을 마주치던 것도 옛일이 됐다. 유진씨의 팔목과 발목은 성인의 손으로 한 줌도 채 되지 않았다. 김신애씨는 "그냥 식물인간처럼 아무 반응이 없는 상황이에요, 근육은 말랐고 눈은 흐릿해요"라고 흐느꼈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으로 중단된 치료 앞에서 발달장애인인 유진씨가 보호받을 방법은 없을까. 엄마인 김신애씨는 '정부의 최소한 지원'이라도 간절하다고 호소했다.
"당장 대단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에요. 복지관의 방역을 철저히하고 최소한 두 시간마다 체온을 확인하고, 최소인원 소그룹으로 한 두번이라도 치료를 이어갈 수 있잖아요. 아이들이 사회 안에서 숨을 쉴 수 있도록 최소한의 창구를 닫지는 말아야죠."
발달장애 아들을 키우던 60세 엄마의 죽음, 그리고...
▲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로 심각해진 발달장애인 부양 문제를 알리고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촉구하고 있다. ⓒ 이희훈
김신애씨는 지난 6월 3일에 받은 충격을 조심스레 털어놨다. 광주에서 발달장애인 아들과 어머니가 사망한 채 발견된 사건이다. 어머니는 코로나19 이후 광주지역 복지시설이 폐쇄돼 혼자서 아들을 돌봤다.
"그 어머니 나이가 예순이더라고요. 예순까지 발달장애 아들을 어떻게든 키워낸 거에요. 그런데 코로나19로 복지시설이 문을 닫자 그건 버틸 수 없었던 거죠. 마지막 끈이 탁 끊어진 마음이었겠죠.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 어머니의 마음을 너무 알것 같아서..."
올해 나이 쉰, 김신애씨는 예순까지 발달장애인 아들을 키운 엄마의 마음을 떠올렸다. 정말 죽을만큼 노력했을 거라고, 아들의 미소 한 번에 하루의 시름을 잊었을거라고 생각했다. 김씨는 "예순까지 버티던 엄마도 코로나19 때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거죠, 사람이 고립된 것 만큼 힘든게 없어요"라며 "요즘 답답해서 밤에 잠을 못 잔다"라고 말끝을 흐렸다.
한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17일 기획재정부로부터 제출받은 제3차 추경안(35조 3000억 원 규모) 취약계층 지원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삭감된 취약계층 지원 예산 1576억 원에는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 사업(교육부) 130억 원, ▲발달장애인 활동 보조 사업(복지부) 100억 원 ▲ 치매관리체계 구축 사업(복지부) 179억원 ▲ 공공어린이 재활병원(복지부) 사업 45억원 ▲ 장애인직업능력 개발 사업(고용부) 15억원 ▲ 장애인취업성공패키지 지원 사업 (고용부) 10억 원 등이 포함돼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장애인들이 코로나 시대에 생존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6월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주간활동서비스지원법 제정 ▲발달장애인 권리보장·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 등 9개 법령 제·개정 ▲복지서비스 확대, 노동권 보장을 요구했다. (관련기사 : "60세 엄마가 왜 25세 아들과 함께 죽었겠나" http://omn.kr/1nvt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