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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냉장고야, 오늘 뭐먹지?”…가전업체가 동화책 만드는 이유

페이지 정보

작성자 경남장가센터 조회 1,928회 작성일 23-08-3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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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임직원들이 서울 강동 암사재활원에서 '가전학교' 동화책을 활용해 느린 학습자 아동에게 가전제품 교육을 하고 있다. 사진 LG전자


“아이가 습관처럼 냉동실에 아이스크림 넣어뒀는데, 이젠 왜 냉동실에 넣어야 하는지 이해하고 장 봐온 다른 음식도 냉장·냉동 칸에 척척 분류해냅니다. 얼마 전엔 시장에서 사 온 삼겹살을 냉동실이 아닌 냉장실에 넣더라고요. ‘오늘 저녁 반찬으로 먹고 싶다’면서요.”

10살 느린 학습자(경계성 지능장애) 자녀를 둔 설지희씨는 최근 LG전자의 ‘가전학교’ 동화책을 일상교육에 활용했다며 “가전제품을 매일 접하지만, 기능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는데, 아이가 나중에 홀로서기를 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30일 가전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LG전자 등 가전회사들이 장애인의 가전사용 편의를 높이는 ‘착한기술’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과거 제품 버튼에 점자돌기 스티커를 붙여 시각장애인의 편의를 높이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최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장애별’ 맞춤형 기능까지 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LG전자는 올해부터 잠재 고객인 장애아동 교육에 팔을 걷었다. 냉장고·에어컨 등 가전제품 설명서를 그림책으로 만든 ‘가전학교’ 시리즈(『안녕 냉장고, 오늘 뭐 먹지』, 『안녕 에어컨, 시원한 여름을 부탁해』)를 통해서다. 특수교육 교사의 감수를 거쳐 제작된 이 책은 가전제품의 과학적 원리와 생활지식을 글·그림으로 설명하는 이야기책과 안전한 제품 사용법을 담은 설명서, 스티커 놀이 등으로 구성됐다. 출시 5개월 만에 누적 발행 부수 1만 부를 넘어설 정도로 인기다.

LG전자 '가전학교' 동화책 표지. 사진 LG전자LG전자 '가전학교' 동화책 냉장고편에서 냉장고의 작동 원리를 알기쉽게 설명하고 있는 모습. 사진 LG전자


특수학생 지도를 맡고있는 김은영 개포초 교사는 “지적장애·자폐 아동은 그림과 같은 시각적 단서에 잘 집중하는데, 그림책을 통해 가정에서 친숙했던 가전에 대해 학생들에게 쉽게 이해시킬 수 있었다”며 “가전의 사용법을 넘어 식중독·냉방병 예방 등으로 확장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농인들이 청소기를 쉽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수어를 사용한 사용설명서를 만들었다. 제품에 대한 기본소개와 함께, 먼지를 비워주는 ‘청정 스테이션’ 사용법, 청소 구역·목적에 따른 브러시 선택 방법 등이 영상으로 담겼다.

앱 등 소프트웨어(SW)를 통해 장애인들의 가전사용 문턱을 낮춘 것도 특징이다. 지체장애인이 삼성 ‘스마트싱스’ 앱에서 “냉장고 문을 열어달라”고 말하면 자동으로 도어를 열어주고, 청각장애인이 세탁종료를 인식할 수 있도록 세탁 후 도어가 자동으로 열리는 등의 기능이다. 삼성전자는 또 올해 출시한 TV·스마트모니터 신제품에 색약자를 위한 ‘씨컬러스 모드’를 기본으로 탑재했다.

삼성전자 TV신제품에서 색약자를 위한 '씨컬러스 모드'로 컬러 필터를 설정하는 모습. 사진 삼성전자


LG전자는 장애인이나 노인들의 가전제품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유니버설 업 키트’도 만들었다. 손 움직임이 섬세하지 않은 지체 장애인이 세탁기 도어를 쉽게 여닫을 수 있도록 하는 ‘이지 핸들’, 적은 힘으로도 무선청소기를 작동하도록 돕는 ‘보조 받침대’,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 실리콘 리모컨 커버’ 등이다. 지체·청각·시각·뇌병변 장애인으로 구성된 LG전자 장애인자문단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다.

가전사들이 접근성 개선 경쟁에 나서는 이유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점차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또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제품의 일부 개선을 통해 고객층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채호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불편함을 찾아 선제적으로 해결하는 건 편리함을 추구하는 가전이 모두를 위한 기술로 발전하는 과정”이라며 “이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 없이 다양한 고객과 장기적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최근엔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며 노령층이 가전제품 사용에 소외되는 경우도 많은 데, 사회적 약자 전체를 포용할 수 있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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