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집 밖으로 나서는 길’ ③ 독일 발달장애인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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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남장가센터 조회 1,984회 작성일 23-10-26 09:32본문
비장애인과 말타고 노래하고 춤추고… ‘장애 없는’ 일상
- 기사입력 : 2023-10-11 20:59:47
독일의 장애인 정책은 ‘social inclusion’ (사회적 포용) 하나로 설명이 가능하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사회에 참여할 수 있게 지원해 준다는 의미로, ‘사회적 포용’은 정책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의 분위기로 퍼져 있다. ‘사회로 포함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독일의 성인 발달장애인의 하루를 따라가며 알아본다.
지난달 19일 오후 베를린의 한 공원에서 토니(맨 앞)가 승마동호회 회원들과 승마를 하고 있다.다운증후군 가진 열아홉살 토니
비장애인들과 격없이 어울려 지내며
취미로 매주 밴드·댄스·승마 동호회 활동
특수학교 졸업 후 취업 등 미래 꿈꿔◇“내게 불가능한 것은 없어”= 지난달 19일 오후 베를린의 한 승마학교 인근에서 만난 토니(Tony Dobberstein·19)는 아이들과 조랑말의 털을 빗겨주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토니씨는 5살 때부터 매주 금요일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베를린의 승마 동호회를 나가고 있다. 일요일인 이날은 승마 동호회에서 1년에 한 번씩 여는 승마 대회가 열리는데, 토니는 이번이 첫 참가다. 토니의 아버지인 토레(Tore Dobberstein·48)씨가 승마 대회를 위해 토니와 함께 승마장으로 나왔다.
승마 대회는 간단히 조랑말을 타고 공원을 한 바퀴 도는 식으로 진행됐다. 맞은편에는 승마 숙련자들이 펼치는 화려한 퍼포먼스가 진행됐는데 메달을 받은 이후로도 이를 지켜보는 토니가 볼멘소리를 냈다. “나도 저걸 하고 싶어.”
토니는 하고 싶은 것이 많다. 그리고 대부분은 실현하고 있다. 토니가 최근 주기적으로 참여하는 취미 동호회는 3가지다. 월요일에는 댄스, 수요일에는 밴드, 금요일에는 승마를 나간다. 이외에도 가족, 친구들과 자주 캠핑을 나가고 여름에는 섬머 페스티벌, 겨울에는 스키를 타는 등 비장애인과 장애인 그룹을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이는 토니가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토니가 다양한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것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벽’을 두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기반이 된다. 토레씨는 “장애인이 비장애인 그룹에 들어오는 것에 부정적인 시선은 없는 편이다. 대부분은 토니를 환영하고 토니가 다양한 취미와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얘기했다.
지난달 19일, 토니씨와 가족이 식탁에 모여 미소를 짓고 있다. /어태희 기자/활발한 성격을 가진 토니씨에게는 그에게 맞는 정부의 지원이 이뤄진다. 만약 토니의 부모가 토니의 활동을 보조할 상황이 안된다면 개별 보조 서비스(Einzelfallhilfe)를 이용할 수 있다. 이 서비스는 참여에 관한 연방법(Federal Act on Participation)에 따라 기본적인 생활에서의 보조뿐만 아니라 가정적인 환경, 야외활동이 활발한 장애인 당사자의 성향 또한 반영한다. 1~2시간의 쇼트타임에서, 상황에 따라 몇 주간 활동보조 지원을 위한 금액을 배정한다. 한국의 활동 지원 서비스로 보면 되는데, 한국의 경우 예산을 정해놓고 15구간까지 등급별로 지원을 해주는 반면, 독일은 별도의 예산과 등급을 정해놓지 않고 장애인들의 요구에 따라 지원을 조정하고 예산을 받는 방식이다. 특히 한국은 등급을 한번 정하면 특별한 사정 없이 등급이 바뀌지 않지만, 독일은 장애인 당사자의 활동과 니즈(needs)에 변화가 있으면 추가로 예산 신청을 할 수 있다.
토니의 활동 사진. 토니는 비장애인과 다름없이 밴드, 캠핑, 댄스 등 취미를 즐긴다./토레씨 제공/
토니씨의 활동 사진. /토레씨 제공/독일 장애인 정책 핵심은 ‘사회적 포용’
장애인 요구 맞춰 활동보조 서비스 지원
돌봄·주거·자립 지원 촘촘하고 체계적
장애인·가족 각자 자신의 삶 온전히 누려◇미래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비장애인이 할 수 있다면 장애인 또한 할 수 있다. 때문에 독일의 발달장애인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다. 토니는 올해 여름, 독일의 특수학교인 발도르프에서 12학년을 마치고 졸업했다. 이후 독일의 필수 인턴십 제도인 프락티쿰(Praktikum)을 진행했고, 이제는 환경재단에서 운영하는 농장에서 FOJ(Freiwilliges Okologisches Jahr (FOJ)/자발적 생태의 해)를 1년간 수료하게 된다. 대부분의 독일 비장애인 청소년, 청년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지만 처음에 토니는 이 프로그램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이에 토레씨가 교육청에 이의를 제기하고 이게 받아들여지면서 토니 또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교육청은 토니가 프로그램을 수료할 수 있도록 활동보조사도 지원했다.
지난해 성인이 된 토니는 자립에 대해서도 가족과 논의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자립’을 꺼낼 수 있는 것은 독일에 장애인을 위한 주거 지원 정책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시설 주거형태와 재가 주거형태로 지원했는데, 최근에는 완전한 자립형태인 재가 주거형태를 중점으로 정책이 이뤄지고 있다. 이는 ‘시설보다 재가의 우선성’이라는 법적 원칙을 기본으로 한다. 개인 주거는 물론, 5명까지 함께 거주할 수 있는 주거공동체와 개인이나 부부 및 파트너가 함께 거주하는 돌봄 주거정책, 돌봄 방식에 따라 재가에서의 24시간 돌봄 형태, 주 단위로 몇 번을 방문하는 파트 타임식 재가 형태 등이 있다. 토니는 “집을 나가면 다운증후군 여자친구인 클라라(Klara), 친구 등과 함께 살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생활 보조 공동체로의 자립을 희망하는 셈이다.
토니씨의 활동 사진. /토레씨 제공/
토니씨의 활동 사진. /토레씨 제공/◇장애는 중요하지 않아= 부부는 토니의 다운증후군을 임신 중에 확인할 수 있었다. 아버지 토레씨와 어머니 안나(Anne Dobberstein·46)에게 자녀의 장애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토레씨와 안나씨 모두 장애인과 어울려 지내며 살았기에 의학적 문제, 즉 ‘태어난 자녀가 장애로 아프지 않을지’에 대한 걱정만 들었다. 부부는 아들의 느린 속도에 삶을 맞췄다. 학교를 보낼 때 매일 자전거 뒷자리에 태워 등교를 시켰던 토니는 10학년이 되면서 지하철로 학교와 집을 오갈 수 있는 정도가 됐다. 물론, 지하철로 다른 곳은 가지 못하지만 그에 따른 문제는 없다.
발달장애인의 가족은 자신의 삶을 온전히 즐기고 있다. 독일은 장애인 부모에게 금전적 수당을 포함해 돌봄 서비스를 위한 주간·야간돌봄, 부재 돌봄, 단기 돌봄 등 지원, 가사 도움 등을 지원하고 부모의 신체·정신적 케어를 위한 의료적 재활도 지원한다. 개별 보조 서비스(Einzelfallhilfe)는 물론 우리나라에는 예산으로 인해 인원수용의 한계가 있는 낮시간 지원 프로그램(주간활동, 주간보호, 보호작업장 등)도 모든 장애인들이 신청하면 받을 수 있는 권리다. 이외에도 다양한 장애인 기관에서 자체적으로 장애인 자녀를 돌봐주거나 장애인 캠프를 여는 등 다양한 지원책을 두고 있다. 그렇기에 안나씨의 걱정은 이제 사회로 발을 내디딘 자녀를 향한 평범한 부모들의 우려와 같다. “성인이 됐으니 이제 사회 구성원이 될 텐데, 토니가 자신의 재능을 문제없이 펼치고 사회가 이를 편견 없이 바라봐 주길, 그래서 이 사회에 융합(inclusion)될 수 있기를 바라요.”
글·사진= 어태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