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집 밖으로 나서는 길’ ① 한국 발달장애인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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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남장가센터 조회 1,962회 작성일 23-10-05 19:36본문
집 안 세계에서 벗어나 집 밖 세상을 꿈꾸다
가족에게 전가된 장애인 돌봄
전체 장애인 중 10%가 발달장애인
경남 장애인 부모 주도로 복지정책 변화
법률 제정·교육·가족 지원 등 견인했지만
코로나 돌봄 공백에 극단 선택 비극도
지난해 6월 9일 오전, 경남도청 앞에서 때아닌 곡성이 울렸다. 4월부터 5월 한 달간 경남 밀양을 비롯, 전국에서 6명의 발달장애인 가족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사망해 도청 앞에서 차려진 합동추모식에는 400여 명의 발달장애인 가족이 나와 비통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이 못다 삼킨 눈물에는 슬픔보다 두려움이 앞서 담겼다. 그들의 비극은 ‘나의 일’이기도 하기에
경남장애인부모연대 등이 지난 2018년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경남부모연대/
◇경남 부모들 ‘발달장애 정책 변화’ 도화선= 발달장애인은 지적인 발달이 정상적으로 발달되지 않은 이들을 뜻한다. 통상적으로 지적장애, 자폐스펙트럼이 이에 해당하며 뇌 병변과 뇌전증 등 중복 장애로도 나타난다. 경남의 경우 지난 8월 말 기준 등록된 장애인은 18만9947명,15개 장애 유형 중 발달장애인(지적·자폐성)은 전체 10%인 1만9400명으로 지체(46%), 청각(15%) 장애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전국적으로도 발달장애인은 전체 장애인의 9.6%로 파악되고 있지만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들을 위한 정책이 부재했다.
윤종술 경남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은 “당시 장애 학생 서비스는 특수학교가 전부였는데, 이마저도 특수학교와 특수학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장애 학생 절반이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며 “성인 장애인 정책 또한 시설 중심에만 머물렀는데, 시설에 두고 ‘보호’하는 목적 이외에는 다른 서비스는 없었다. 심지어 극소수를 대상으로 했기에 대부분의 발달장애인 삶은 오로지 가족들의 몫이었다”고 얘기했다.
발달장애인의 정책 변화는 경남 장애인 부모들에게서 시작됐다. 2003년 한국장애인부모회 경남지회(현 경남장애인부모연대)를 필두로 경남 장애인 부모가 거리로 나왔다. 운동은 집요하고 강렬했다. 집회, 삭발, 단식, 삼보일배 등 몸을 던져 할 수 있는 모든 투쟁을 단행했다. 전국적으로 번져나간 부모 운동은 기존의 특수교육진흥법을 폐기하고 2007년 4월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을 새로이 제정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이어 2011년 ‘장애아동복지지원법’, 2014년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을 견인했다. 2009년 시행된 장애영유아동 발달재활서비스 또한 2년 앞서 경남 부모회가 지역사회혁신사업으로서 제안하면서 시작됐고, 전무했던 장애인가족에 대한 지원책도 2007년 경남에서 장애인가족지원센터가 처음 설치되면서 전국적으로 마련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서야 지원 정책이 청소년 방과 후 활동·주간 활동·장애인 활동 지원·가족 휴식 지원 서비스 등으로도 발전, 장애인이 가족의 돌봄 없이도 일정 시간 일과를 보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가정 내 돌봄 부담이 커진 사이 20명의 발달장애인 가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가족을 살해하는 참사가 이어지자, 부모들은 다시 거리로 나오게 됐다. 바꾸고 바꿨음에도 여전한 ‘평생 돌봄’을 이제는 끝내야 했다.
한국장애인부모회 경남지회(현 경남장애인부모연대)가 지난 2007년부터 2008년까지 특수교육진흥법 폐기를 위해 운동에 나선 모습./경남부모연대/
자립을 향한 멀고도 험한 길
‘24시간 돌봄’ 발달장애인 자립 초석
현재 지원시스템은 ‘거동 여부’에 초점
전국 최중증 발달장애인 340명만 혜택
일상 보조하는 ‘인적 지원체계 개편’ 절실
◇이제는 ‘24시 돌봄’을 외치다= ‘24시간 돌봄’을 외치는 장애인 부모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여전히 발달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는 정책은 미비하고 가족의 돌봄 부담 또한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개선해야 할 부분은 산적하다는 주장이다. ‘24시 돌봄’ 안에는 낮시간서비스, 일자리 서비스, 주거 서비스 등의 요구가 포함되고 있지만 가장 큰 화두는 인적 지원체계의 변화다.
장애인의 일상을 돕는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의 경우 대부분 거동이 가능한 발달장애인에게 지원되는 시간은 한계를 가진다. 장애인 활동 지원은 바우처 구간(1구간~15구간)에 따라 이용 시간의 차이가 명확한데, 책정 기준이 개별 장애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거동 여부에 치중돼 있어 발달장애인의 90%는 12~15구간으로 책정받는다. 보호자 없이 밖으로 나갈 수도, 화장실을 이용할 수도, 식사를 할 수도 없음에도 거동이 가능하면 낮은 구간으로 책정된다는 의미다. 1구간의 지원 시간은 월 480시간(하루 16시간가량), 15구간은 60시간(하루 2시간가량)이다. 낮 시간 주간 활동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 이 활동 지원 서비스의 시간도 일부 차감된다.
인적 지원의 개편은 장애인의 자립과도 연결된다. 만약 발달장애인이 주거지를 확보하고 가정을 떠나게 됐을 때 이들이 정상적인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보조하는 인적 시스템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앞서 지원 시간에 한계가 명확한 현행 정책으로는 자립한 발달장애인의 일상을 보조할 수 없다. 그렇기에 ‘24시 돌봄’은 발달장애인이 자립으로 향하는 초석이기도 하다.
김기룡 중부대학교 특수교육학과 교수는 “자립에는 주거, 일자리가 필요하지만 발달장애인의 자립에는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인적 자원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 개인의 필요와 특성과 요구에 맞게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 구조로 이뤄져 있어 주거가 있어도 사실상 자립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장애인 복지에 선도적인 국가는 서비스 수혜자가 욕구, 필요와 그에 대한 근거를 통해 활동 지원을 신청하면 서비스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그 근거를 판단하고 시간을 책정한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책정된 예산이 있어 그 예산 안에서 제공 시간을 다 정해버리고 거기에 맞춰 수많은 개인의 욕구와 필요를 일괄적으로 맞추고 있다”며 “이 시스템이 변화해야 자립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집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정부는 지난해 처음으로 ‘24시 돌봄’을 언급했다. 내년 6월 시행되는 ‘발달장애인법’ 개정안에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이 담기게 되는데, 이를 통해 ‘24시간 1:1개별 돌봄’이 전국에서 시행된다. 그러나 대상은 ‘최중증 발달장애인’으로 2024년 수혜를 받을 이들은 전국 340명에 불과하다. 2021년 보건사회연구원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의 22.5%가 모든 일상생활에 도움이 필요하지만, 340명은 전체 발달장애인(26만3311명)의 0.1%에 불과하다.
지원 방향에 대한 이견도 있다. 현재 광주에서 24시간 돌봄 시범사업을 진행 중인데, 낮에는 복지관에서 개인별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밤에는 선택에 따라 집으로 귀가하거나 지원주택으로 이동해 돌봄을 받는 형태다.
윤종술 회장은 “그룹홈처럼 시설에서 24시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결국 발달장애인을 통제하는, 보호주의에 입각한 행정편의주의 서비스”라며 “주거유지서비스를 포함한 명확한 지원주택 방식의 24시간 지원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립과 관련해서도 ‘2023년 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시범사업’이 경남 거창군을 포함한 전국 7개 지자체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전체 발달장애인의 10%에 불과한 시설장애인만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재가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자립지원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어태희 기자 ttotto@knnews.co.kr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