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집 밖으로 나서는 길’ ② 경남 발달장애인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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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남장가센터 조회 2,073회 작성일 23-10-26 09:31본문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아기’… ‘평생돌봄’ 굴레에 갇힌 가족
- 기사입력 : 2023-10-09 21:29:13
지적장애 1등급 이경환·김민지씨
씻고 밥 먹고 배변 처리 스스로 못해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도움 손길 있어야주간활동서비스 참여해 사회성 훈련
의사표현·야외활동 등 변화 생기고
돌봄 부담 줄었지만 부모 몫 여전히 커성인 발달장애인 중 주간활동 대상 5%뿐
낮 시간 서비스·활동 지원 이용 어려워
장애인·가족 지키려면 24시간 돌봄 필요“소원이 하나 있다면, 우리 아이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사는 거예요. 모든 발달장애인 부모가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평생 돌봄’이 목에 가시처럼 찔리는 순간이 있다. 발달장애인 자녀가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서다. 그들은 일도, 독립도 할 수 없기에 평생을 보호자의 밑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혼자 남을 자녀의 모습은 상상하기도 두렵다. 우리나라에서 성인 발달장애인으로 사는 것, 그들의 가족으로 사는 것은 어떤 일일까. 창원에 거주하는 한 성인 발달장애인의 하루를 따라가며 그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발달장애인의 가족으로 사는 것= 지난달 8일, 창원 마산회원구에 사는 배선이(63)씨는 손자 이경환(28)씨를 깨워 씻기고 아침을 먹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경환씨는 지적장애 1등급의 발달장애인. 쌍둥이로 태어난 경환씨는 뇌 일부가 눌린 상태로 태어난 미숙아였다. 일련의 사정들로 손자인 경환씨는 할머니인 배씨가 키우게 됐다.
소근육이 약해 양치질과 세안부터 머리를 감고 씻는 것까지 경환씨 혼자서 할 수 없다. 같은 이유로, 젓가락은 다루지 못하지만 숟가락은 다룰 수 있다. 반찬이 다양한 상을 차리면 배씨가 매번 반찬을 경환씨의 숟가락 위로 올려준다. 28년간 배씨에게는 당연한 일상이다. 그럼에도 감사하다. 오랜 시간 동안 경환씨는 발전했다. 말은 하지 못하지만 싫고 좋음의 의사 표현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부단한 교육의 결과다.
배선이(오른쪽)씨가 지적장애 1등급인 손자 이경환씨의 식사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배씨는 교육과 훈련을 반복했다. 7살 때까지 걷지 못했던 경환씨는 집에서, 언덕에서, 계단에서 걷는 연습을 해 8살이 되면서 비로소 스스로 걸어 다닐 수 있게 됐다. 9살에는 특수학교에 입학했다. 그해 여름에 기저귀를 풀었는데 그래도 5분 간격으로 소변이 샜기 때문에 가방에 플라스틱병을 가지고 다녔다. 이후로 완전히 배변을 조절하기까지 3~4년이 더 걸렸다. 다만 아직도 배변처리는 타인이 도움을 줘야 한다.
이렇듯 경환씨는 보호자 없이 정상적인 일과 생활을 할 수 없지만 활동보조사가 활동에 도움을 주는 ‘장애인활동지원’은 13구간(월 120시간)에 속한다. 최대 1구간에서 15구간까지인데, 경환씨의 경우 거동이 가능하고 돌봐줄 가족이 있기 때문에 높은 구간을 책정받지 못했다. 주간활동센터를 이용하니 22시간이 더 차감된다. 그렇기에 경환씨가 활동지원을 사용하는 날은 배씨가 바쁜 업무가 있는 날과 주말·공휴일에 불과하다. 나머지 돌봄은 배씨의 몫이다. 평생을 함께했기에 더 힘든 일은 없지만, ‘내가 없다면…’을 생각하면 막막하다.
“내가 없으면 어떻게 할까요. 다른 보호자가 없으면 시설에 가게 되겠죠. 요즘 시설이 좋아졌다지만, 시설 내 인권유린이 옛말만이 아니고 시설에서 정해진 시간에 따라 일괄적으로 사는 것은 온전한 자신의 삶이 아니잖아요.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며 사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일까요.”
지난달 8일 경환씨가 마산회원구에 위치한 주간활동센터에서 ‘몸으로 감정표현하기’를 하고 있다.
경환씨가 주간활동센터에서 미술활동을 하고 있다.◇사회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 가족이 있지만 가족의 돌봄을 온전히 받지 못하는 발달장애인 또한 있다. 김민지(가명·30)씨와 어머니 이지영(가명·56)씨는 모두 지적장애를 가진 다장애가정이다. 민지씨는 지적장애 1등급, 지영씨는 2등급이다.
이들 가족은 15년 전, 경남장애인부모연대로부터 발굴된 ‘위기가정’으로, 발견 당시 한 평 남짓한 좁은 집 안에 쓰레기가 가득했다. 어머니인 지영씨는 지적장애가 있었지만 장애등급을 판정받지 않은 상태였다. 연대는 이 가정을 지자체에 알리고 몇 년에 걸쳐 집 안을 청소하고 지원책을 연결했다. 발굴 당시에는 네 가족이었지만 민지씨의 아버지가 사망하고 비장애인이었던 동생은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나면서 지금은 집 안에 두 모녀만이 살고 있다. 모녀는 6년 전부터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활동 보조사인 김경희(60)씨가 이들 가정에 지원 나온 것은 1년이 조금 넘었다. 새벽 6시에 집을 방문해 집을 청소하고 밥을 차려 민지씨와 지영씨를 깨운다. 민지씨의 경우 기저귀를 뗀 지 이제 두 달이 됐기 때문에, 아직도 침대나 집안 곳곳에 대소변이 있는 경우가 많다. 지영씨와 달리 민지씨는 스스로 씻을 수 없기 때문에 김씨가 직접 씻겨 밥을 먹이고 9시쯤 주간활동 차량을 태우기 위해 마중을 나간다. 김씨는 이후 지영씨와 시간을 보낸다. 집을 청소하고, 반찬을 만들어 놓고 오후 1시가 되면 집을 나선다.
언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지영씨와 달리 민지씨는 언어 사용은 물론,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배가 고플 때는 사람을 꼬집는 등 도전행동을 하기도 한다. 김씨는 주간활동에 나선 지난해부터 민지씨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얘기했다.
활동보조사인 김경희씨가 민지씨의 머리를 말리고 있다.
김경희씨가 민지씨와 주간활동센터 차량을 기다리고 있다.◇조금 넓어진 세상이지만= 경환씨와 민지씨는 9시 30분, 마산회원구에 위치한 주간활동센터에 도착한다. 주간활동서비스 사업은 장애인의 보살핌을 목적으로 하는 보호시설과 달리 만 18세 이상 64세 이하의 성인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창의활동을 주로 진행한다. 시범사업 이후 2019년부터 전국 사업으로 확대해 지역 곳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대부분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경환씨와 민지씨가 이용하는 해당 센터는 ‘자기 결정권’을 가장 중요하게 다룬다. 한 달에 한 번 발달장애인 이용자들과 원하는 활동을 회의해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매일 게시판에 적힌 프로그램 옆에 이용자가 직접 자신의 얼굴이 나와 있는 스티커를 붙이며 하고 싶은 활동을 선택한다. 9월 8일 자 프로그램은 미술활동, 종이접기 활동, 몸으로 표현하기, 볼링게임, 피아노 수업 등 10가지가 있다. 모두 소근육 발달, 감정과 의사 표현 증진, 자립생활 훈련 등에 도움이 된다. 같은 장애인 이용자들과 비장애인 교사들과 함께하기에 사회성을 배울 수 있고, 집에서 벗어나 함께 야외활동을 하기도 한다. 그저 집 안에만 머물렀던 성인 발달장애인들의 세상이 주간활동으로 더 넓어진 셈이다. 발달장애인 부모에게도 낮 시간대 자녀의 활동 지원은 큰 도움이 된다. 돌봄의 부담이 줄어든 만큼 경제 활동을 나설 시간이 생긴다.
그러나 모든 발달장애인이 주간활동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 예산에 따라 주간활동 대상자는 1만명으로 제한된다. 전국 발달장애인 26만 명 중 성인 발달장애인은 17만 명가량으로 이 중 주간활동 대상자는 5%에 그치는 셈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에 따르면 성인 발달장애인 7~8만 명은 낮 서비스(주간활동, 주간보호, 직업 재활, 낮 데이 서비스 등)를 못 받고 있다. 활동 지원 시간 또한 13구간 이하로 책정되기 때문에 이들의 24시간 돌봄은 부모의 몫이며, 활동 지원은 ‘급한 일’이 있을 때 쓰게 된다. 발달장애인 부모가 ‘24시간 돌봄’을 외치는 것 또한 이것에 있다.
윤종술 경남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은 “낮 시간에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면 성인 발달장애인과 가족은 24시간 함께 있어야 한다. 정상적인 자녀라 할지라도 매일 24시간, 평생을 함께 있는다면 지옥과도 같을 것”이라며 “모든 성인 발달장애인이 낮 시간 서비스를 제공받아야 장애인도, 가족도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얘기했다.
글·사진= 어태희 기자 ttotto@k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