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부모들의 ‘오체투지’ 절규의 간절함이 가닿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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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남장가센터 조회 2,149회 작성일 23-06-15 17:18본문
[왜냐면] 김종옥 |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문화예술특별위원장
발달장애를 가진 남매를 홀로 키우던 엄마가 지난해 말기암을 진단받았다. 진단을 받은 그날부터 자신의 항암투병보다 남겨질 남매가 살아갈 방도를 찾느라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지금까지 아이들의 존엄은 엄마가 죽을 힘으로 지켜줬으나 엄마 없는 세상에서 그들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질 게 뻔했다. 자립을 위한 거처, 일상을 도와줄 지원이 모두 필요했다. 줄기찬 호소로 기어이 남매의 살 방도를 마련한 엄마는, 투쟁을 함께한 이들에게 그제야 안심하고 죽을 수 있겠다 말하며 기뻐했다. 투쟁하는 동안 말기암이 유보되기라도 한 것처럼 기운이 펄펄 나더란다.
아이가 발달장애를 가졌다는 것을 안 그 순간부터 부모는 이 엄마와 같은 심정이 된다. 지원 시스템이란 게 허술하게 엮은, 엉터리 나무다리 같은 이 세상에서 부모만이 아이의 유일한 다리이자 울타리인데, 부모가 무너졌을 때 아이는 어찌 살 것인가. 그 절망 속에 갇혀버린 이들은 아이의 목숨을 거두고 자신도 죽이고 말았다. 허무하고 무참한 죽음이 지난해에만 열 건이 넘는다. 죽이고 죽어간 이들을 위한 추모가 내내 이어지는 동안 정부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진심 어린 사죄나 반성, 위로가 될 만한 지원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지난해 8월 ‘우리 정부의 2, 3차 이행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에서 부모가 (발달)장애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하는 사례에 대해 깊은 우려와 함께 정부에 대책 마련을 강력하게 권고했다.
2019년 장애인 부모 209명의 삭발과 삼보일배로 문재인 정부는 발달장애 생애주기별 종합지원대책을 내놓았으나 이 약속은 가다 말고 멈췄다. 지난해 4월에는 새 정부를 향해 556명이 삭발로 호소했으나 답이 없었다. 올해 3월 나온 정부의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은 ‘발달장애인 평생돌봄 지원체계 마련’이라는 목표를 써놨으나, 이는 요리 없는 주방에서 나온 차림표와도 같다. 지원의 절대량이 부족한데 이름만 바꾸거나 맛보기 사진뿐인 차림표가 무슨 소용인가. 차림표만 보면서 25만5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지금 당장의 삶을 유보하라는 말인가. 복지를 오직 비용 문제로 말하는 건 곧 사람의 삶을 싼값에 처리하겠다는 얘기이거니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가운데 장애인복지비용이 최저 수준인 나라에서 할 말은 아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2년 발달장애인 실태조사 및 지원방안연구’ 자료를 보면, 일상생활 지원이 일정 부분 또는 상당히 필요한 발달장애인이 70%가 넘는데, 일상생활 및 낮 시간 지원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발달장애인은 63.2%다. 강선우 의원실의 ‘2022년 국정감사 정책자료집’을 보면, 평생 부모나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발달장애인이 80.4%이고 일상생활 지원은 대다수 부모에게 전가(88.2%)되고 있으며, 59.8%의 장애인 부모가 극단적 선택을 고민한 적이 있다.
조세희 작가는 “역사의 빛나는 순간엔 늘 절규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했다. 지난 4월부터 전국에서 지자체를 상대로 순회투쟁을 이어온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14일에는 중앙정부를 향해 ‘발달장애인 전 생애 정책,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기반한 완전한 사회통합 정책. 발달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체계 구축, 발달장애인의 가족 지원 강화’를 요구하며 오체투지 행진을 벌였다. 이날 서울 용산역에서 대통령실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오체투지의 절규가 울렸다.
가장 낮은 곳에 온몸을 내던져 엎드려 숨을 토하고 그 숨을 거둬 일어서 한 발 내딛는 이 걸음은 벼랑 끝에 서 있는 누군가의 허리춤을 붙잡아 내리는 심정으로 절규하는 투쟁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 여기며 산다는 어느 나라에서는 ‘사람은 모두 평범하고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한다. 내 나라에서도 그 마음이 구현되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오체투지의 간절함은 어디에 가닿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