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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뉴스

“살해 후 자살 그만” 발달장애인 부모 600명 오체투지

페이지 정보

작성자 경남장가센터 조회 2,128회 작성일 23-06-15 15:49

본문

올해만 발달장애 가족 사망참사 4건
삼보일배, 단식, 삭발… 정부는 무응답
결국 거리로, 2시간 동안 1km 오체투지
부모들 “더는 죽을 수 없다, 유엔에 정부 제소할 것”

한 발달장애 자녀 부모가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이라고 적힌 몸자보를 입고 오체투지 중이다. 팔을 머리 방향으로 쭉 편 채 아스팔트 위에 엎드려 있다. 사진 하민지한 발달장애 자녀 부모가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이라고 적힌 몸자보를 입고 오체투지 중이다. 팔을 머리 방향으로 쭉 편 채 아스팔트 위에 엎드려 있다. 사진 하민지

발달장애 자녀의 부모 600여 명이 2시간 동안 1km를 기었다. 자녀를 살해하고 자신은 자살하는 참사를 멈춰달라고 윤석열 정부에 요구하기 위해서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하늘이 부글부글하더니 잠시 비가 왔다. 한 발달장애 자녀는 오체투지를 준비 중인 엄마에게 비 온다고 걱정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엄마는 “괜찮아. 우리 딸도 엄마도 잘 살기 위해서 하는 거야. 딸, 걱정하지 마”라고 대답했다. 비는 조금 오고 그쳤지만 이내 무더운 날씨가 이어졌다. 축축한 아스팔트 위에 엎드리면 바로 옆 도로를 지나가는 자동차 열기가 훅 끼쳐왔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의 목탁 소리에 맞춰 온몸을 바닥에 붙였다가 일어나는 일은 1분당 평균 3회 정도 반복됐다. 600명 부모는 2시간 30분 동안 약 450회를 엎드렸다 일어서길 반복했다. “이거 생각보다 힘드네”, “아이고, 죽겠다” 하기도 했지만 600명 모두 한 명도 낙오하지 않고 완주했다.

부모들이 오체투지 중이다. 그 옆을 택시가 지나가고 있다. 사진 하민지부모들이 오체투지 중이다. 그 옆을 택시가 지나가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삼보일배, 단식, 삭발… 안 해본 게 없지만 정부는 ‘무응답’

전국장애인부모연대(아래 부모연대)는 14일 오후 2시 30분, 용산역부터 대통령실청사 인근 삼각지역까지 오체투지 투쟁을 진행했다. 이들이 서울 시내 한복판을 기게 된 건 ‘발달장애인 전 생애 권리 기반 지원체계 구축’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부모연대는 지원체계를 요구하며 안 해 본 게 없다. 5년 전인 2018년 4월 2일, 발달장애인 부모 209명이 삭발투쟁을 했다. 같은 달 30일에는 300여 명이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수립하라고 외치며 광화문에서 청와대 앞까지 삼보일배를 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그해 9월에 ‘‘제1차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아래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부모들 요구에 응답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예산은 점점 깎여갔고 결국 부모들은 2021년 11월, 단식투쟁을 감행했다.

지난해 4월 19일에는 부모연대 활동가,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을 포함해 557명의 발달장애인과 그의 가족들이 동시에 삭발투쟁을 했다. 이 같은 투쟁의 결과로 ‘발달장애인 참사 대책 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이 통과됐지만 특위 구성은 아직 되지 않았다. 윤종술 부모연대 대표는 “21대 국회에서 가장 많은 동의를 얻고 통과된 결의안이다. 그런데 위원회 구성과 관련해 여야 의견이 다르다고 한다. 참사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대책은 세우지 않는 상황”이라고 규탄했다.

윤 대표가 말하는 ‘참사’는 발달장애인 가족이 맞닥뜨린 사망사건을 뜻한다. 부모연대에 따르면 올해에는 네 건의 참사가 발생했다.

· 2월, 경기도 거주 20대 발달장애 아들과 아버지가 강원도 춘천시 소양호에서 숨진 채 발견

· 2월, 서울시 거주 30대 발달장애인, 홀로 집에 있다가 화재로 사망

· 2월, 전라남도 담양군 거주 40대 발달장애인, 홀로 집에 있다가 화재로 사망

· 5월, 경상남도 창원시 거주 발달장애 남매를 둔 어머니, 자살

부모들이 오체투지 중이다. 오른쪽에 형광색 우비를 입은 경찰이 줄지어 서있다. 사진 하민지부모들이 오체투지 중이다. 오른쪽에 형광색 우비를 입은 경찰이 줄지어 서있다. 사진 하민지

윤석열 정부는 대선 당시 ‘발달장애 영·유아를 위한 국가 조기개입 추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장애등록과 무관하게 영·유아기에 발달지연이 있으면 누구나 ‘진단, 재활치료, 교육, 가족지원’을 즉시 제공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부모연대는 “참사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며 전 생애에 걸친 24시간 지원을 요구 중이다. 부모연대가 요구하는 2차 종합대책에는 영유아기-아동기-성인기 등 전 생애주기에 걸쳐 발달장애인 당사자를 지원하고 돌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전국 지방자치단체 12개 지역을 돌며 2차 종합대책 수립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아무런 응답이 없는 상태다.

정부는 24시간 돌봄지원 정책을 발표했지만 ‘최중증’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최중증 발달장애인에 한해서만 24시간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조건은 또 있다. 보호자인 가족이 입원, 경조사 등으로 발달장애인 당사자에게 돌봄을 제공하지 못할 때만 최대 일주일까지 24시간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부모연대는 ‘새로운 장애등급제의 부활’이라며 즉각 반발했지만 정부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결국 발달장애 자녀 부모 600여 명은 길바닥에 몸을 내던지게 됐다.

조계종 스님들과 부모들이 오체투지 중이다.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부모들도 있다. 사진 하민지조계종 스님들과 부모들이 오체투지 중이다.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부모들도 있다. 사진 하민지

- 더는 죽을 수 없다, 자립은 발달장애인의 권리

오체투지에 앞서 오후 1시부터는 용산역 잔디광장에서 ‘오체투지 출정식’이 진행됐다.

윤종술 대표는 5월에 사망한 어머니가 부모연대 회원이라고 말했다. 윤 대표에 따르면 고인은 자녀가 장애진단을 받은 이후 어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안내해 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윤 대표는 “아버님(고인의 남편)이 (고인이 사망한 지) 일주일 후 저희(부모연대) 사무실에 찾아와서 ‘조금만 더 (부모연대를) 일찍 알았어도 부인이 저세상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한탄했다”고 전했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지난해 발표한 국정감사 정책자료집에 따르면 발달장애 부모의 59.8%가 극단적 선택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한다. 윤 대표는 “한국의 미비한 시스템이 우리(발달장애 자녀와 가족)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더는 죽을 수 없어서 거리로 나왔다. 만약 윤석열 대통령이 ‘전 생애 24시간 지원체계 수립’을 수용하지 않으면 우리는 윤 대통령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 제소할 생각”이라고 규탄했다.

오체투지 중인 한 부모.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려 있다. 사진 하민지 오체투지 중인 한 부모.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려 있다. 사진 하민지 

발달장애인 당사자인 박경인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위원장은 자신의 어머니에 관해 발언했다. 박 위원장은 “오랫동안 엄마를 찾으러 다녔다. 엄마는 나를 만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 인생이 있고 엄마의 인생이 있기 때문”이라며 “내가 엄마에게 짐이 될까 봐 (나를 만나는 걸) 거절한 것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것에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의 발언을 듣던 부모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미혼모시설에서 태어나 23살이 될 때까지 쭉 시설에서 살았습니다. 오랫동안 엄마를 찾으러 다녔습니다. 작년에 경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엄마가 나를 찾는 걸 원하지 않아서 연락처를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너무 속상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 내 인생이 있고 엄마의 인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내가 엄마 인생을 망가트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내가 짐이 될까 봐 부담이 돼서 거절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근데 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엄마,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것에 감사해요. 이제 나한테 미안해하는 마음을 갖지 말아요. 저는 잘 살고 있기 때문에 엄마 인생도 행복하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각자 살다가 가끔 얼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를 찾았던 겁니다. 나를 사랑은 했을까. 나를 떼어놓고 가는 마음은 어땠을까. 그래서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나 같아도 고등학생 때 아이를 가졌다면 그 환경에서는 아이를 놓고 갈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애아이라면 더 많이 버려지기도 합니다.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목숨을 빼앗고 자기 목숨을 던지는 일이 일어날 때마다 무섭기도, 슬프기도 합니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부모님들이 나서서 투쟁하셨고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제도와 환경이 조금씩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투쟁)이 없더라도 우리(발달장애인)가 자립해서 살아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짐이 돼서가 아니라 자립이 우리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박경인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위원장)

한 부모가 엎드려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사진 하민지한 부모가 엎드려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사진 하민지

출정식 이후 부모들은 2시간 동안 1km 거리를 오체투지 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최유진 씨의 아버지 최정주 씨는 “윤석열 정부는 자식 잃은 부모 마음을 헤아릴 생각이 있나. 내가 겪기 전엔 이렇게 아픔이 깊은지 몰랐다. 힘닿는 데까지 함께하겠다”며 피켓을 들고 오체투지 대오와 함께 행진했다.

오후 5시 20분경, 대통령실청사 인근 삼각지역에 도착한 부모들은 결의대회를 열고 이날 집회를 마무리했다. 이들은 △장애아동 조기개입 및 가족지원을 위한 법률적 근거 마련 △발달장애 청소년 방과후활동서비스 확대 △최중증 발달장애인 다중지원 주간활동서비스센터(가칭) 설치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제도화 △발달장애인 주거환경 조사 및 개선방안 마련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행동지원서비스센터 설치 등을 담은 정책요구안을 대통령실에 전달할 예정이다.

출처 : 비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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