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활동지원사입니다, 지하철 시위 비난하는 분들께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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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남장가센터 조회 2,182회 작성일 22-04-01 15:04본문
왜 장애인들은 그렇게 필사적인가.. 오랜 기간 거절당한 삶이 가진 울분과 독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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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철 기자]
▲ 3월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이형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삭발식을 마치고 지하철을 탑승 하고 있다. |
ⓒ 이희훈 |
장애인활동지원사는 장애인의 활동을 지원하는 사람이다. 한 명의 장애인에게 배정돼 정해진 시간 동안 손발이 되어준다. 일 보고 뒤 닦는 손까지 되어준다고 생각하면 업무 이해가 쉽다. 나를 장애인활동지원사라고 소개하면 "사회복지사세요?"라고 되묻는데, 그것보다는 간병사에 가깝다. 하는 일도, 요구되는 자격사항의 난이도나 급여체계도 비슷하다.
내가 보조하는 장애인은 뇌병변 중증으로 손가락 정도만 움직일 수 있어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손가락으로만 조이스틱을 움직이면 온몸을 원하는 대로 이동시킬 수 있으니 전동휠체어는 그에게 자유렸다.
하지만 그 자유는 잘 닦인 길에 한정돼 있다. 길에 조금이라도 요철이 있으면 덜컹거리는 탓에 안 그래도 연골이 메마른 경추에 만만치 않은 충격이 전해지고, 10cm 정도의 턱만 있으면 그 너머는 그림의 떡이 되기 일쑤다.
예상하듯이 버스, 지하철, 장애인콜택시 등 대중교통에도 몇몇 난관이 있다
▲ 2001년 8월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크게 이슈화 시켰던 버스점거투쟁. |
ⓒ 다큐인 |
마지막으로 버스를 탔던 게 10년 전 쯤이었으니 정확한 정보는 아닐 수 있다. 그때 10번 정도 경험을 하고는 다시는 버스를 이용할 엄두를 못 냈으니까. 그래도 상황 이해에 도움이 될까 싶어 과거 저상버스를 이용해 본 경험을 설명해보려 한다.
버스를 타려고 하면 벌어지는 풍경은 매우 비슷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면 일단 버스기사가 당황했고, 발판을 제대로 설치하지 못했으며, 운행 시간이 지체되곤 했다. 그러면 승객들은 내려서 다른 버스를 타러갔다. 결국, 결말은 '포기'다. 장애인의 포기.
버스기사와 승객들에 대한 미안함에 장애인은 발길을 돌려 지하철로 향한다. 그나마 지하철은 타고 갈 수는 있으니까.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경험담이긴 하나, 지금도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휠체어 장애인을 보기 힘든 걸 보면 상황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진 않은 것 같다.
▲ 신길역 장애인리프트 추락참사, 서울시 사과 요구 2018년 6월 14일 오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신길역 리프트 사망사고에 대한 서울교통공사의 사과를 촉구하며, 지하철 1호선 신길역에서 서울시청역까지 열차에 줄지어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시위를 벌였다. |
ⓒ 권우성 |
이제 지하철로 가보자. 지하철은 '안전빵'이지만 편한 선택은 아니다.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냥 엘리베이터만 타면 된다고 생각할 텐데, 이게 막상 해보면 녹록지 않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만' 이용한다는 것은 완전히 동선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1층에서 지하1층 대합실, 대합실에서 지하2층 승차장으로 최소 2번은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지하철역마다 구조가 달라 처음 가는 지하철역에서는 40대인 나도 키오스크 앞에 선 70대 노인이 된다. 지하철 역사 구조도를 아무리 봐도 어디에서 어떻게 엘리베이터를 타야하는지 몰라서 결국 안내데스크를 찾아 구두로 물어보게 된다. 지상에서는 더 골치다. 물어볼 곳도 없고, 1번부터 8번까지의 출구 중에 몇 번 출구에 엘리베이터가 있을지 몰라서 일단 가서 확인하고 횡단보도를 건너 엘리베이터로 가야 한다.
환승은 더 문제다. 예전에 한 역에서 환승을 하려던 적이 있는데, 지상으로 나가서 다시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야 했었다. 이건 환승이라기보다는 퇴장 후 재입장이라고 하는 게 옳다. 지하철 어플에서 검색한 소요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다. 나 혼자 가면 3~5분이면 될 환승이 장애인과 함께라면 10분~20분이 돼버린다. 그쯤되면 일상은 여정으로 바뀌고, 기진맥진은 따 놓은 당상이 된다.
또 하나 복병은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는 일이다. 여의나루역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을 때가 있었는데 일요일이라 수리가 안 됐다. 이럴 때의 대안은 어이없게도 여의도역뿐이다. 엘리베이터가 안 되면 역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역으로 걸어가야 한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2017년 추석 연휴가 시작된 9월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기자회견을 마치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면담 요청 및 장애인이동권보장 논의기구 구성을 위한 농성을 하고 있다. |
ⓒ 이희훈 |
콜택시
결국 장애인의 이동수단은 장애인콜택시로 옮겨 간다. 버스나 지하철과 달리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만큼 편한 것도 없고, 실제 이동 가능한 수단도 그것 밖에 없다. 그래서 생기는 문제가 배차 지연이다. 수요에 공급이 따르지 못하니 배차 시간은 점점 늘어난다. 이건 내가 아는 랜덤 중 최고의 랜덤이다.
배차를 요청하면 바로 올 때도 있고, 심한 경우는 2시간 이상을 기다리기도 한다. 집에서 불렀을 때야 2시간을 쉬었다 가면 되는데, 밖에서 2시간을 넘게 기다리기는 참 힘든 일이다. 아마 장애인 중에 휠체어에 앉아 2시간 이상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텐데, 그들도 꽤나 힘들 거다.
정확한 대기 시간을 알려주지도 않으니 언제 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어디 들어가 있을 수도 없다.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카페를 찾는 것도 일이라 대개는 도로에서 그냥 기다리는데, 매우 힘들다.
가끔 그런 생각도 해본다. 장애인 고용이 문제라고 고용을 늘리라고 하는데, 늘리면 감당은 할 수 있나? 지금도 장애인콜택시는 출근 시간 배차를 전날에 미리 예약할 수 있는데 예약은 금방 차는 편이고, 예약을 해도 배차가 30분은 늦을 때가 많다. 장애인 고용을 늘리면 아마도 그걸 감당할 교통수단까지 같이 늘어나든지 2시간 지각 정도는 용인해야 될 것 같다.
▲ 3월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이형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삭발식을 하고 있다. |
ⓒ 이희훈 |
이런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피켓을 드는 거다. 늘 파업이나 시위가 있으면 시민 불편을 조명하는 언론들에게는 큰 기대가 없으나, 그나마 장애인의 일이라면 슬쩍 눈감아주던 여론도 이번에는 좀 다른 모양새다.
아마도 먼저 나서 선을 넘었다고 외치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몸빵'을 해주니 약자를 배려하는 여론에 막혀 있던 볼멘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일 테다. 불만은 숨겨져 있는 것보다 공론장으로 나오는 편이 나으니 나쁘지는 않은 일이다. 오히려 이렇게 말할 일이 생겨서 좋기도 하다.
시민들의 불편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나도 활동지원사로서 전장연 시위에 따라 가보기도 하고 먼발치에서 몇 번 보기도 했었는데, 과격할 때는 참 과격하다. 그리고 전동휠체어라는 것이 꽤나 무겁고 강철이라 작정하고 달려들면 전투마차 같은 느낌이 나기도 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과격보다 오랜 기간 거절당한 삶이 가진 울분과 독기가 먼저 보인다. 누구든 자존감, 자기 존재의 가치를 고민하지만 나는 장애인들만큼 자기가 존재해도 될 이유를 필사적으로 찾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정말 필사적으로.
무엇보다 '자신의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해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여론, 그래서 '불법'이라는 결론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나의 기본권을 위해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이 대부분의 경우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나, 살아보니 세상에는 항상 예외라는 것이 있더라.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용납되지 않는다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응원하고 싶은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을 거다. 나의 경우는 해외의 어떤 나라에서 상습 성폭행범을 동네 사람들이 집단 구타한 일이 그랬다. 그런 경험에 비추어 시민을 볼모로 삼는다고 일컫는 장애인의 시위 또한 용납이 안 되는 일인지, 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는 게 좋겠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2019년 8월 9일 오후 서울역 인근 서울로 7017에서 대형현수막을 내리고 일대 도로를 점거해 농성을 하고 있다. |
ⓒ 이희훈 |
어느 사회든 장애인은 전체 인구의 5~10% 정도는 된다고 한다. 그중 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증장애인은 통계를 찾을 수는 없지만 200명 중에 1명은 되지 않을까 싶다.
1~4호선 지하철 한량의 적정 탑승 인원이 160명이라고 하니 비율로만 따지면 2량에 1명 정도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없다. 출근 시간에 지하철을 탈 수 없으니까 없다. 어딜 가도 당연하게 장애인은 출근 시간을 피한다. 붐비는 지하철에 휠체어를 들이밀 수가 없으니.
장담컨대 휠체어 1대면 출근길 지하철 대란을 일으킬 수 있다. 출입문에 바퀴 하나만 걸치고 나도 좀 태워달라고 하면 그걸로 끝이다. 만원지하철의 승객들은 자리를 비워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을 거고, 출입문이 안 닫히면 그제야 승무원이 와서 교통정리를 하고 태우고 가든지 내리라고 하든지 하겠지. 여기까지가 최소 5분이고, 장애인이 나도 출근해야 한다고, 이거 못 타면 지각이라고 버티기라도 하면 5분은 더 연장될 수 있을 거다.
자의든 타의든 장애인들은 지금까지 줄곧 자신의 기본권을 포기하고 여러분의 기본권을 보장해주고 있었다. 직업도 포기하고, 복지관에서 제공하는 공공일자리로 연명하고, 출근은 고사하고 외출도 삼가면서, 어차피 불편할 버스나 지하철 대신에 먼 길을 휠체어로 이동해가며 세상에 없는 듯 여러분의 편리를 가능케 했다. 그게 어떤 삶인지는 쉽게 공감하기 어려울 거다. 척수장애라도 와서 하반신이 마비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세상 일이 다 그렇듯, 내 일이 아니면 공감이 어려운 법이니까.
기본권에 대하여 장애인들은 자신의 불편을 호소하기 위해 비장애인들을 공감케 하는 기법을 다양하게 개발한다. 개인적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는 '미장애인'이다. 장애인이 아니라는 비장애인에서 점 2개를 떼어내 '아직은' 장애인이 아니라는 의미의 '미(未)장애인'이라는 말을 만든 거다.
우리 가족 중에도 미장애인이었다가 장애인이 된 사람이 둘 있다. 한 명은 뇌졸중이고, 한 명은 암이다. 추락사고, 교통사고 이런 드라마틱한 게 아니라도 우리는 장애인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한 번은 장애인이 된다.
이걸로도 설득이 되지 않으면 이렇게라도 생각해보자. 개인에게 장애는 우연이지만 공동체에게 장애는 필연이라고. 몇 해 전, 서울에 물난리가 났을 때 서울의 하수도 시설이 10년 강우량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100년 강우량을 견디지 못한다고 비판하는 기사가 있었다. 100년에 1번꼴이라도 필연적으로 찾아올 위험이라면 대처했어야 하지 않냐고 성토하는 글이었다.
물난리가 강남에서 나서 그런 것인가 싶기도 한데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조금 차이가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장애인 문제와는 사뭇 접근 방식에 차이가 있다. 장애는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존재할 필연인데 그에 대한 대처는 100년에 1번꼴로 나타나는 홍수만도 못하다.
아마도 그렇게 내버려 둬도 내 기본권은 침해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미장애인 여러분,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의 불법성을 토로하는 여러분들에게 꼭 이 말을 드리고 싶다.
▲ 전국장애인차별연대 등 장애인 단체회원들이 3월 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교육권 완전보장을 요구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
ⓒ 이희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