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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뉴스

장애인, 세상을 '쏘댕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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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남장가센터 조회 2,265회 작성일 22-03-3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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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기] 인권연대 숨이 주관한 휠체어로 '저상버스 쏘댕기기'

[배시혜 기자]

▲  인권연대 숨에서 제작한 저상버스 타고 쏘댕기기 포스터
ⓒ 인권연대 숨
두 다리 대신 동그란 바퀴, 앞을 보는 시야 대신 노란 조끼를 입은 안내견.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는 걸 다른 사람보다 빨리 깨우친 이들에게 세상은 여전히 차갑다. 2020년 기준 국내 등록된 장애인의 수는 약 263만 명에 달한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역사는 21년이 됐으나, 이들의 이동권은 여전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 이를 바꾸고자 사회로 나가면 이기적이라며 혐오 발언이 쏟아진다. '착한 장애인'만을 원하는 사회가 장애인들의 입을 막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어려움 속에서 느리지만 선명한 보폭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청주시 장애인 이동권 향상을 위해 '저상버스 타고 쏘댕기기'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인권연대 숨 활동가들이다. 지난 15일 인권연대 숨이 주관하고 기자가 직접 동행한 휠체어로 '저상버스 쏘댕기기', 그 현장을 기록해봤다.

저상버스로 세상을 움직이다

'쏘댕기다'. 미묘하게 친숙한 이 말은 '나다닌다'는 뜻의 충청도 방언이다. 그래서 인권연대 숨의 프로그램 '저상버스 타고 쏘댕기기'는 말 그대로 휠체어 이용자인 인권연대 숨의 이구원 활동가가 저상버스를 타고 청주 도심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으로, 지난 2020년 11월에 시작해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휠체어를 타고 저상버스를 이용해 국립현대미술관 등 청주의 문화적 공간을 방문하고 탑동에서부터 청주대까지 이어지는 이면도로를 현장 답사했다. 올해 루트는 청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작해 오송역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청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 장애인 전용 창구의 실효성 ▲ 편의시설의 문턱 ▲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탑승 가능한 시외버스의 유무 등을 점검하고자 했다. 가장 먼저 문의를 하기 위해 찾아간 장애인 전용 창구에는 직원이 대기하지 않는 대신 직원 호출용 벨이 있었다.

호출을 통해 나온 직원에게 청주 내 시외 저상버스는 몇 대가 운영 중이냐고 물으니 0대라는 답이 돌아왔다. 청주에서 운행하고 있는 시외버스 400여 대의 중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혼자 탑승할 수 있는 시외버스는 단 한 대도 없었다.

자리를 옮겨 살펴본 시외버스터미널 내부는 생각보다 준수했다. 터미널 바로 앞에 있는 시내버스 정류장부터 매표기까지 점자블럭이 깔려 있었고, 카페와 같은 편의시설은 문턱 없이 낮은 경사처럼 돼 있어 휠체어의 진입이 수월했다. 2층까지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도 정상운행 중이었다.

다만 휠체어 높이에 맞는 매표기가 없어 매표기 화면이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시야에 온전히 들어오지 않았다. 또 코로나19로 인한 폐쇄 영향으로 하차장에서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내리막길이 천막으로 가려져 휠체어 보행이 불가능한 곳도 있었다.

이와 같은 몇몇 요소만 제외한다면 청주 시외버스터미널의 설비는 장애인에게 나름 친화적이었다. 그러나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시외버스는 단 한 대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쏘댕기기에 동행한 기자로서는 '그저 허울만 좋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정류소 블럭의 높이와 저상버스 리프트 높이가 맞지 않아 리프트가 완전히 내려오지 않았다. 그 탓에 휠체어가 혼자 올라갈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
ⓒ 배시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송역으로 이동하는 길에 탑승한 저상버스에도 장애인 이동권의 실태가 드러났다. 첫째로, 시내버스 정류장 버스정보안내기의 화면이 휠체어 높이에 거의 맞지 않았다. 화면의 일부는 보였던 매표기와 달리 높이에 역광까지 더해지자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시점에서는 화면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도로와 정류장의 거리가 멀지 않은 구조적 특성상 휠체어가 서 있을 공간도 마땅치 않았다.

두 번째는 저상버스의 리프트 문제이다. 휠체어 이용자가 저상버스에 탑승하기 위해서는 버스 정류장이 있는 인도에 버스가 바짝 붙어 서야 하므로, 동행하는 이 혹은 휠체어 이용 당사자가 버스 기사에게 직접 수신호를 보내야 한다. 그런데 이 수신호란 것이 특정 행동으로 규정된 것이 아니기에, 당사자가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버스 기사가 알아보지 못하면 소용없다.

그 탓에 이날 동행한 이재헌 활동지원사가 미리 손을 흔들어 수신호를 보냈음에도 버스 기사는 "왜 신호를 보내지 않았느냐"며 불평했다. 버스 리프트 역시 인도의 높이 탓에 제대로 내려오지 않아 이구원 활동가는 이재헌 활동지원사의 도움으로 버스에 겨우 탑승할 수 있었다.

이날 우리가 탄 버스는 747번 버스로, 오송역으로 향하는 몇 안 되는 저상버스 중 하나다. 최근 오송역으로 향하는 또 다른 버스인 502번 노선에도 저상버스가 도입됐지만, 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처럼 저상버스 대수 자체가 적다 보니 출퇴근과 등하교 시간대의 탑승은 더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운 좋게 저상버스를 맞이한다 해도 그게 끝이 아니다. 계절에 따라, 정비 상황에 따라 고장 가능성이 잦아 불안한 저상버스 내 자동 리프트도 문제다. 이용하려는 버스가 저상이라고 해도, 리프트가 고장 난 상태라면 말짱 꽝이라는 것이다.

물론 정상적인 리프트 상태의 저상버스를 탑승할 때도 리프트를 인도에 붙이는 데에 드는 시간 탓에 버스 탑승객들로부터 받는 눈총은 피할 수 없다. 이런 따가운 시선은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에 큰 걸림돌이 된다.

한편, 이런저런 어려움 끝에 겨우 탑승한 747번 버스로 30분여를 달렸을까, 드디어 오송역에 도착했다. 오송역은 이구원 활동가와 같은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이 다른 지역 이동을 위해 평소에도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활동지원사 없이는 탑승이 어려운 저상버스와 달리 기차는 플랫폼마다 기차 탑승 리프트가 있어 혼자서도 이용할 수 있다. 더하여 장애인 콜택시의 광역이동이 불가능한 청주시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에게는 거의 유일한 광역이동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곳마저도 장애인들에게 '무해'한 공간은 아니었다. 매표소 옆에 있는 무인발매기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안내 지원이 없고, 발매기 위 점자는 점자 해독이 불가능할 만큼 무뎌져 있었다. 역무원에게 오송역에서 음성 방면으로 가는 전동휠체어 탑승 가능 열차가 몇 대인지 묻자, 거의 매 대 존재할 거라는 답이 돌아왔지만 실제로 무인발매기를 통해 확인해 보니 한 차 건너 한 차 수준으로 배차돼 있어서 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하면 다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안정감 등을 이유로 수동 휠체어보다 전동휠체어를 선호하는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은 배차 간격이었다. 휠체어를 올리기 위한 리프트는 KTX, SRT, 새마을호, 무궁화호가 정차하는 모든 플랫폼에 존재했다. 다만 해당 리프트를 이용하려면 교통약자창구를 통해 15분 전에 이용을 신청해야 한다. 그렇게 신청해도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면 이 역시 곧 지연으로 이어졌다. 오송역의 설비는 비장애인에게만 '무해'했다.
 
▲  무궁화호와 새마을호 승하차 플랫폼에 존재한 휠체어 리프트 사진이다. 함부로 사용할 수 없게 자물쇠로 잠구어져 있다.
ⓒ 배시혜
오송역에서의 일정을 마지막으로 프로그램 종료 후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구원 활동가는 "지금까지 갔던 쏘댕기기 장소 중 이번이 가장 어려웠다. 이전까지는 좋은 부분을 많이 말했는데, 이번에는 실질적으로 탑승이 불가능한 시외버스 문제를 말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이어 그는 "저상버스는 단순히 장애인'만'을 위한 편의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충분히 논의될 수 있는 하나의 권리다"라며 저상버스 도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발전과 비발전, 그 경계에서

쏘댕기기 프로그램 현장에서 알 수 있었듯, 청주시 장애인 이동권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광역이동 측면에서 더욱 그랬다. 자차를 제외하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기차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탑승 환경이 녹록하지 않았다. 청주시 장애인들은 이전부터 꾸준히 장애인 콜택시 광역이동 승인을 요구해왔지만, 지금도 해결되지 못한 난제로 남아 있다.

시외버스는 저상버스 아예 없기에 활동지원사의 도움 없이는 탑승 자체가 불가능하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시외버스를 탑승하려면 기본적으로 활동지원사같은 동행인이 휠체어와 장애인을 함께 들어올려야 한다. 하지만 이것도 수동 휠체어일 때의 이야기다.

근로복지공단 재활공학연구소의 2012년 '초경량 전동휠체어 시험 및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전동휠체어의 무게는 50~100kg이다. 수동 휠체어는 무게가 가볍기에 이동 중 장애인이 휠체어와 함께 넘어질 우려가 있다. 더구나 두 손을 모두 사용할 수 없는 장애인은 이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전동휠체어를 선호하는 장애인이 늘어났고, 이는 시외버스를 '타기 어렵다'에서 '탑승 불가'로 만들었다.

이런 상황은 청주에만 한정된 게 아니다. 지난 2019년 10월부터 전동휠체어 탑승 설비를 장착한 고속버스 10대가 시범운행을 시작했으나 탑승 가능한 휠체어가 한정돼 있고 ▲서울↔부산 ▲서울↔강릉 ▲서울↔전주 ▲서울↔당진 등 노선 역시 고르지 못했다. 현재는 이 중 3대가 운행을 중단해 전국에서 전동휠체어 탑승 설비를 갖춘 시외버스는 단 7대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이구원 활동가는 "지자체나 국가에서 시외저상버스 문제를 회사로 전가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조차 대부분 권고 수준에 그친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광역이동 이외에도 문제는 또 있다. 시내에서 운행 중인 저상버스도 이용이 불편하다. 저상버스 내 자동 리프트의 잦은 고장 자체도 문제지만, 많은 버스 기사가 휠체어 이용자가 탑승할 수 있게 리프트가 인도에 완전히 내려왔는지 확인하지 않는다.

버스 정류장에서 휠체어 이용자가 대기할 만한 공간이 여의치 않은 것도 문제다. 그리고 이 같은 환경적 요소들을 떠나, 저상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휠체어 이용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장애인들을 힘들게 한다.

장애인 이동권 관련 여건이 잘 갖춰진 독일은 지난 2009년을 기점으로 수도 베를린에서 운행하는 모든 시내버스를 저상버스로 바꿨다. 이어 지난 2020년 1월 1일부터는 독일 전역 모든 시외버스와 고속버스가 배리어프리로 탈바꿈했다. 또한, 저상버스의 리프트는 고장이 잦은 자동 대신 불편해도 고장이 적은 수동으로 장착했다.

이는 기사가 아닌 탑승객이 나서 휠체어 이용자를 도와주고 배려하는 문화가 있기에 가능했다. 독일에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에게 불평을 쏟아내는 비장애인도, 눈치를 보는 휠체어 장애인도 없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느리지만 변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서울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무장애 버스정류소'를 시행했는데, 이는 도로와 너무 가까워 휠체어가 진입할 공간이 없던 정류장에 휠체어 진입 공간을 충분히 마련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  서울에 있는 무장애 버스 정류소이다. 협소한 장소 탓에 휠체어가 서 있을 수 없는 기존 정류장과 달리 휠체어가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든 덕에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편리하게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 배시혜
지난 2월 17일, 휠체어 이용 장애인 등 교통약자 세 사람이 대한민국과 서울시, 경기도, 금호고속, 명성운수를 상대로 제기한 '시외이동권 보장을 위한 차별구제소송'에 대한 선고가 내려졌다.

소송한 지 8년 만에 나온 해당 판결에는 "원고들이 향후 피고(버스회사)가 운행하는 모든 노선의 버스에 탑승할 구체적·현실적 개연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내용이 있었다. 대법원은 시외버스에 탑승 설비를 설치하긴 해야 하나 '즉시' '모든' 버스에 설치토록 하는 판결을 비례원칙에 위배된다고 봤다.

결국 8년의 결과는 부분적인 '혜택'으로 돌아왔다. 3월 17일에는 서울교통공사에서 장애인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작성한 문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언더도그마' 등 장애인단체를 공존의 대상이 아닌 적으로 바라보는 내용에는 혜화역 엘리베이터 가동 중지 사건과 언론의 악의로 인해 오해가 생겼던 임종 사건이 담겨 있었다.

해당 문건에 대해 서울교통공사는 공사 차원이 아닌 직원 개인의 의견이 담긴 작성물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직원 개인이든, 서울교통공사 집단의 의견이든,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요구가 공기업에 의해 짓밟힌 건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 사람이 자유롭게 본인의 의지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권인 '이동권'. 이 권리가 정말 미뤄도 되는, 시급하지 않은 것일까? 어떠한 이유로든 권리는 '다음에'라는 말로 넘겨질 수 없다. 이제는 방관, 비난, 허울뿐인 중립이 아닌 '연대'를 택해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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