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시설에서 나와 같이 살자!"..장애인 당사자·가족의 탈시설 증언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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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남장가센터 조회 2,218회 작성일 21-11-23 11:25본문
“얘들아, 시설에서 나와서 같이 살자! 나 너무 심심하다!”
정의당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이 19일 오후 국회 제8간담회실에서 ‘탈시설 당사자와 가족 증언대회’를 열었다. ‘탈시설’은 장애인 생활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 통합돼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전장연 등 장애인 단체들이 10년 이상 요구해온 숙원이다.
이날 증언대회에서는 누구보다 시설을 잘 알고 직접 경험했던 증언자들이 모여 자신의 ‘탈시설 후기’를 생생하게 공유했다.
발달장애인인 박경인씨는 태어날 때부터 시설에 살았다고 했다. 20년 넘게 여러 장애인 시설을 전전하던 그는 2019년 시설에서 나왔다. 박씨는 한 명의 관리인과 장애인 4~5명을 묶어 생활하게 하는 일종의 소규모 시설인 ‘그룹홈’에서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그가 만났던 한 ‘그룹홈 선생님’은 집안일을 못하고 동생을 잘 돌보지 못했단 이유로 주걱으로 박씨의 얼굴을 때리기도 했다.
박씨는 “얼굴을 얻어맞아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는데, 언젠가는 멍을 가라앉히겠다고 뜨거운 찜질팩을 하다가 얼굴에 화상을 입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학교 선생님의 도움으로 마음이 맞는 새 선생님을 만났다. ‘엄마’라고 부를 정도로 잘 지냈지만 박씨는 스무 살이 되자 성인이 됐다는 이유로 또 다른 시설로 이사해야 했다. 박씨는 “적응하면 선생님이 또 그만두고 또 그만두고, 이사를 다니고 하는 생활이 반복됐다. 너무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20년 넘게 시설에 살다가 2년 전 탈시설한 발달장애인 박경인씨가 19일 국회에서 열린 ‘탈시설 당사자와 가족 증언대회’에서 자신의 경험을 증언하고 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 페이스북 캡처
발달장애인 자녀가 있는 임현주씨는 “우리 지원이가 고3 졸업하는 날, 내 인생은 끝이다”라고 말해왔다. 발달장애인인 아들 지원씨가 20살이 될 때까지는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낮 동안 일을 할 수 있지만, 학교를 졸업해 집에 있게 되면 온종일 아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지원씨가 스무 살이 되자 임씨는 경제활동과 돌봄을 병행할 수 없어 아들을 시설에 보냈다.
시설에서는 발달장애인 지원씨를 ‘치료’한다는 목적으로 양팔에 고정기구를 채우고 수면제를 먹여서 재웠다고 한다. 식탐이 강하다는 이유로 지원씨는 식사 시간에 격리되기도 했다. 임씨는 “시설에서는 직원 한 명당 굉장히 많은 인원의 장애인을 돌봐야 하다 보니,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물 한 번 먹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지원씨는 시설에서 생활하며 몸무게가 28㎏까지 빠졌다고 했다.
이들은 “장애인도 한 명의 인격체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박씨는 2년 전 방 2개에 주방이 있는 집에 혼자 살게됐을 때를 떠올리며 “그 행복함은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내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것이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임씨의 아들 지원씨는 지난해 9년 만에 시설을 나와 현재 지원주택에 살고 있다. 임씨는 “‘탈시설해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무슨 탈시설이냐’, ‘또 다른 시설이 아니냐’라고 하는데 탈시설한 그 자체로 이미 사회에 녹아들고 있는 것”이라며 “아이가 탈시설해서 자기 집에서 살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내 일도 할 수 있는 지금이 최고로 행복한 때인 것 같다”고 말했다.
국무총리 산하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는 지난 8월 ‘탈시설 로드맵’을 발표했지만, 전장연 등 장애인단체들은 로드맵에 밝힌 내용이 소극적이라고 지적한다.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가 보다 분명히 명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단체들은 관련 입법도 촉구하고 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정의당 장혜영 의원 등과 함께 탈시설 지원법을 발의했지만 1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 법안은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