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가는 게 고역인데 이렇게 와주니 감동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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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남장가센터 조회 2,440회 작성일 21-10-27 10:10본문
"주민 6명 달라붙어 옮긴 적도"
제때 질병 진단·예방효과 톡톡
아프면 병원에 간다. 모두에게 당연한 명제지만, 누군가에게는 참이 아니다. 특히, 집 밖에 나서는 일조차 힘든 장애인들은 당연하게 누려야 할 건강권을 오랫동안 누리지 못했다. 2017년 통과된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에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가 담겼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거의 없었다. 그러다 지난 9월 3차 시범사업이 시작되면서 일부 뜻있는 의사들이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25일부터 이틀 동안 장애인 방문의료 현장에 동행했고, 제도 확산의 필요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동네 할매 여섯이 이불 위에 올려서 옮기려 한 적도 있지. 이렇게 방문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지난 25일 오후 1시께 이상래 에스엘신경과의원 원장은 창원시 의창동 한 주택가로 차를 몰았다. 왕진을 가고자 점심은 5분 만에 해치운 참이다. 구불구불한 골목이라 처음에는 헤맸지만, 이젠 내비게이션 안내 없이도 길이 눈에 익었다. 이 원장은 차를 세우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이날만 두 곳 방문이 예정돼 있어 한시가 아까워서다. 대문 앞에서 인기척을 내자 박도자(77) 씨가 반갑게 맞았다.
방으로 들어서자, 박 씨의 아들 조광화(51) 씨가 누워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뇌성마비가 있다. 말로는 의사소통이 어려워 손발짓, 표정으로 의사를 표시한다. 척추 변형으로 앉는 자세도 취할 수 없어 하루 대부분을 누워서 보낸다. 그래도 어머니 박 씨가 계모임 가는 날을 잊을 때면, 손짓으로 알려 주는 효자다.
조 씨는 자신의 몸에 이상을 느낄 때 손짓으로 호소한다. 정확한 증상을 모르니 일단 병원에 갈 수밖에 없다. 휠체어도 탈 수 없는 조 씨가 병원에 가려면 사설 구급차를 이용해야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다. 한 번은 조 씨를 가까운 의원급 병원으로 옮기고자 꾀를 내기도 했다. 동네 주민 6명이 달라붙어 이불을 가마 삼아 박 씨를 태우고 간 적도 있다.
"오늘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아프나요? 아파요?" 이 원장은 혈압과 혈당을 측정하고서, 피검사를 했다. 보호자에게도 욕창은 없는지, 가래가 나오진 않는지, 관절이 안 움직이는 곳은 없는지 등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했다. 이 원장은 "방문 진료할 때 의료장비를 많이 챙길 수 없으니, 예방의료적인 측면이 강하다"라면서도 "진단만 제때 받아도 큰 병을 예방할 수 있는데, 거동이 불편해 병원을 잘 갈 수 없는 사람들은 그조차 어려운 상황인 것"이라고 말했다.
26일 같은 시간, 이번에는 명서동 주택가로 향했다. 지체장애인 정선미(52) 씨 집이다. 정 씨는 5년 전 교통사고로 다리가 불편해져 지팡이 없이 거동이 불편한 상태다. 후유증으로 뇌병변 질환·뇌손상성 치매 증상도 의심된다. 유은순(53) 생활지원사는 "워낙 바깥출입을 꺼려 병원으로 데리고 가기 쉽지 않았는데, 너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정 씨에게 '한국판 간이정신상태검사(K-MMSE)'를 진행하며 기억력·주의 집중력·언어기능 등을 확인하는 한편, 유 생활지원사에게는 '신경행동인지검사'를 병행했다.
정 씨는 "내게는 부처님 은혜 같은 선생님"이라며 싱글벙글 웃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누리집을 보면, 현재 도내에서 장애인건강주치의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의료기관은 모두 19곳이다. 하지만 방문진료까지 진행하는 병원은 에스엘신경과의원·조은세상의원 등 2~3곳뿐이다. 이마저 3차 시범사업기간(9월)이 시작된 이후에 생긴 변화다.
이 원장은 지난 9월부터 장애인 환자 4명을 방문진료하고 있다. 그는 "방문진료를 하려면 내원 환자들을 기다리게 해야 하고, 급여 청구 행정절차도 쉽지 않은 등 어려운 점은 있다"라면서도 "많은 의료인이 용기 내 참여해 준다면 그만큼 한 곳이 감당할 부담이 줄어들면서 제도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