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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뉴스

어릴 때부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교육 받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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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남장가센터 조회 2,233회 작성일 21-08-17 13:48

본문

쌍둥이 엄마의 방구석 심야 영화관: '학교 가는 길'(2020)

장애인들이 다닐 학교를 만들자는 것이 이렇게나 격렬한 반대에 부딪칠 일이며, 개교 결정까지 몇 년이나 걸려서 그 과정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 분량까지 나올 일인가. 영화 '학교 가는 길'을 보고 느낀 솔직한 소회다. '학교 가는 길'은 2020년 강서구에 특수학교인 서진 학교가 개교하기까지 장애인 부모들이 거쳐야 했던 지난한 투쟁 과정을 그렸다.

강서구에 특수학교를 개교하기까지 치열한 투쟁의 과정을 그린 영화 '학교 가는 길' ⓒ영화사 진진

서진학교 개교 전, 강서구에는 특수학교가 부족해서 학생들이 구로구까지 왕복 3시간 버스를 타고 통학했다고 한다. 공진 초등학교가 폐교되면서 교육청은 이 부지에 특수학교를 설립하려고 하나,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친다. 강서구 국회의원 김성태가 가양동이 허준의 탄생지라면서 그 자리에 국립 한방 병원을 세우겠다고 공약했기 때문이다. (교육 부지에 병원을 세울 수 있도록 용도 변경할 권한은 국회의원에게 없다) 주민들은 한방 병원이 들어오면 일자리도 창출되고 주민들도 치료 받을 수 있으니 지역 발전에 더 도움이 된다며 서진학교 설립에 반대한다. 주민토론회 장면은 낯이 뜨거워서 보기 힘들다. 장애인 부모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언어가 난무한다. 학교는 절대 포기 못한다고 무릎 꿇은 어머니들에게 반대 측 주민들은 "쇼하지 말라"고 호통 친다.

학교만은 포기할 수 없다며 한 어머니가 무릎을 꿇은 이 장면은 인터넷에 퍼져나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영화사 진진

단체로 무릎 꿇은 어머니들의 모습을 보고 처참함을 느꼈다. 장애아의 학습권을 보장해 달라는 요구가 죄인이 되어야만 겨우 얻어낼 수 있는 것인가. 학교가 일자리 창출이라는 경제적 가치와 맞바꿀 수 있는 곳인가. 한방 병원이 없다고 해서 주민의 건강이 치명적으로 위협을 받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한데, 수업을 받기 위해 어린이들이 장시간 통학해야 하는 상황은 그들에게 전혀 '위급'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큰 병원이 들어오는 것은 지역 발전이고, 특수학교가 생기는 것은 그 반대라면, 그들이 말하는 발전이란 무엇인가.

눈물 흘리는 어머니들에게 반대 측 주민들은 당당하게 삿대질을 한다. 우리 사회는 최소한의 위선이라도 연기할 수 있는 시민을 키워내는 데 완벽히 실패했다. 마음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든 적어도 겉으로는 특수학교를 기피시설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시민이 써야 할 최소한의 가면이다.

장애인 복지시설이 '넘쳐난다'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장애인 당사자뿐 아닌가요.ⓒ영화사 진진

동물의 세계에는 장애가 없다는 말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장애를 가진 동물은 자연 도태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물이 아니고, 이 사회는 정글이 아니다. 아니, 이미 정글인 것 같지만 정글이 사회의 지향점이 되어선 안 된다. 대놓고 특수학교 세울 거면 다른 동네에 세우라고 핏대를 올리는 건 인간이 써야 할 가장 얇고 가벼운 가면을 벗어던진 것이다.

영화는 이 강렬한 혐오의 뿌리가 무엇인지 밝혀내려고 애쓴다. 폐교된 공진 초등학교는 영구 임대 아파트 단지 학군이라는 이유로 민간 분양 아파트 주민들이 꺼리는 학교가 되었고, 결국 학생 수가 줄어 폐교됐다. 가양동 영구 임대 아파트 단지는 1990년대 초 조성되었는데, 사회 취약 계층을 이곳에 몰아서 입주시키면서 '너희는 여기서 끼리끼리 모여서 살아라'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준 셈이 되어버렸다.

공진 초등학교 폐교 사태는 주택 정책의 실패가 맞고, 가난한 너희들과 섞이기 싫다는 천박한 시민 의식을 보여주는 일례다. 그러나 반대 측 주민들이 사회 취약 계층이라는 것이 이들이 특수학교를 반대하는 것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장애아는 이중의 약자다. 장애인이라서 약자고 어린이라서 약자다. 특히 발달 장애아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찾는 데 보호자의 조력이 필수적이라서 당사자 운동이 어렵다. 그러니 가양동 주민들의 서진학교 설립 반대 운동은 약자들의 정당한 호소라기보다는 약자가 자신보다 더 약한 사람을 귀신같이 감지하고 배척하는 움직임으로 보였다. 그래서 더 슬프고, 더 가혹했다.

영화 속 장애인 어머니들은 자녀들의 권리를 위해 똘똘 뭉쳐 싸우면서 둘도 없는 동지가 된다. ⓒ영화사 진진

그렇다면 우리는 왜 약자와 함께 하는 시민을 키워내는 데 실패했을까. 출연자 김남연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장면이 있다. 사실 우리의 목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생활하고 교육 받는 통합 교육인데, 특수학교는 분리 교육이기 때문에 통합 교육의 걸림돌이 된다고. 지금은 그나마 그 특수학교마저 부족하니까 이를 위해 싸우는 거라고.

특수학교를 만들어 달라고 피 터지게 투쟁하는 영화를 보면서, 역설적으로 통합 교육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절감했다. 이 영화를 보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40살이 다 되어가도록 학교 친구나 직장 동료로 장애인을 만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장애인은 분명 존재하고 있고 존재했는데 내가 사는 세상에선 잘 안 보였다면 첫째는 그만큼 내가 장애인 문제에 무관심했다는 부끄러운 증거다. 둘째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멀찌감치 분리해 놓고 있다는 증거도 될 것이다.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귀하다 ⓒ영화사 진진

지금은 장애아 통합 어린이집이 소수에 불과하지만 어린이집에서부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교육 받으면서 자란다면 어떨까. 기억이 있을 때부터 장애인은 나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는 존재라는 걸 자연스럽게 몸으로 습득한다면? 우리 동네에 특수학교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장애인들을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불청객 취급하는 일도 없어지지 않을까.

우리가 함께 사는 것은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교육 받은 이들이 사회에 진출한다면, 그 사회의 모습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다를 거라고 기대해 본다. 우리 회사에, 사무실에, 동네 편의점에, 옷 가게에, 장애인 직원들이 있는 게 당연하고, 외식하러 혹은 장 보러 외출한 장애인을 마주치는 것이 매일의 일상이 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완공된 서진학교의 모습. 영화 보면서 공사 장면에서 뭉클한 건 이 영화가 처음이었다. ⓒ영화사 진진

특수학교 만들자는 게 이렇게 거센 반대에 부딪칠 일이냐고 서두에 적었지만 사실 이렇게 놀랄 수 있는 것도 비장애인의 특권이다. 나는 지금까지 장애인 문제에 무감하게 살아도 내 삶에 아무런 타격이 없었으니까. 서울에 특수학교가 생긴 것이 17년 만이라고 한다. 나는 이제야 '17년 동안 특수학교 하나 안 짓고 있었다니' 통탄하지만, 이 기막힌 세상이 장애인과 그 부모들에게는 이미 평생 질리도록 목격한 우리 사회의 민낯일 것이다.

노란색 학교 버스를 타고 학생들이 등교하는 장면을 보고 눈물과 웃음이 함께 났다. ⓒ영화사 진진

나의 무관심과 무지도 지금 이 지경이 된 사회의 모습에 일조한 것이기에, 장애와 통합 교육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해서 이 글을 쓰기까지 한없이 조심스러웠다. 글의 내용에 잘못이 있다면, 거침없이 알려 주시면 좋겠다.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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