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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뉴스

쉬운 정보의 시작과 끝, 그곳에는 발달장애인이 존재한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경남장가센터 조회 2,365회 작성일 21-02-01 09:08

본문

발달장애인의, 발달장애인을 위한, 발달장애인에 의한 쉬운 정보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01-29 09:36:29

시작은 언제나 발달장애인으로부터

‘쉬운 정보 만드는 일을 직접 해보자’결심하고 사회적기업 창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처음 한 일은 바로 발달장애인을 만나는 것이었다. 평소 친하게 지냈던 발달장애인에게 연락해 10명을 초대했다. 이른바 소소한소통 최초의 고객 간담회“소소한소통에게 바란다”를 연 것이다. 처음 고객을 마주하고 흥분되는 마음으로 쉬운 정보에 대해 한참 열띤 설명을 했고, 고객들에게 어떤 쉬운 정보가 필요한 지 물었다. 그런데 다양한 요청들이 마구 쏟아지리란 기대와 달리, 그들의 반응은 썰렁 그 자체였다.

‘필요한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제공하는 이 서비스가 정작 발달장애인이 느끼기에는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인가? 내 진심어린 포부가 잘 전달되지 않은 것일까?’머릿속이 복잡했다. 멀뚱히 서로의 얼굴을 쳐다만 보는 고객들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이번엔 질문을 바꾸었다.

백정연 : 주말에 주로 뭐 하며 보내시나요?
참석자 1 : 영화 보러 가곤 해요.
백정연 : 보통 누구랑 보시나요?
참석자 1 : 자조모임에서 같이 갑니다.
백정연 : 혼자 가거나, 친구랑 가본 적은 없으세요?
참석자 1 : 영화표 끊어본 적 없어요. 해보려고 했는데 어려웠어요.
백정연 : 영화표 예매하는 방법을 쉽게 알려드리면 어떨까요?
참석자 1 : 쉽게요? 그럼 그걸 보고 직접 한번 해보고 싶네요.

일상을 어떻게 보내는 지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하니, 이들이 겪고 있는 많은 일상의 불편함과 맞물려 쉬운 정보에 대한 다양한 욕구를 알 수 있었다. 복지관 프로그램 소개, 직원 모집 공고, 전자제품 사용 설명서, 요리하는 법, 여행 정보, SNS 활용법, 인터넷 쇼핑 광고 등 쉬워지길 바라는 부분들에 대한 의견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 때 가장 먼저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이때부터 시작된 일이다.
 
쉬운 정보 관련 간담회 모습. ⓒ소소한소통에이블포토로 보기 쉬운 정보 관련 간담회 모습. ⓒ소소한소통
쉬운 정보의 ‘쉬움’을 결정짓는 당사자 감수

쉬운 정보를 만드는 전 과정이 다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당사자 감수는 쉬운 정보 제작과정의‘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쉬운 정보를 활용할 당사자에게 ‘정말 쉬운지’ 검토를 받고 수정·보완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실제 감수회의를 진행하면 쉬운 정보를 제작한 (발달장애인이 아닌) 사람이 갖지 못한 시각에서 날카로운 의견을 주는 발달장애인이 많다. 그 의견을 통해 조금 더 완성도 높고, 실제 당사자가 필요로하는 쉬운 정보가 만들어지게 된다. 무엇보다 쉬운 정보를 만드는 진짜 이유를 잊지 않고 되새길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보다 오래전부터 쉬운 정보를 발달장애인의 정보 접근 지원 수단으로 활용한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의 나라에서도 쉬운 정보 제작 과정에서 당사자의 참여를 중요시한다. 발달장애인 당사자는 지역사회에서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consultant(컨설턴트)이자 improver(승인자)로서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에 쉬운 정보의 기획부터 제작까지 전 단계에 발달장애인이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당사자로 살아온 삶 자체가 쉬운 정보에 있어서는 ‘전문가’의 자격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발달장애인이 감수자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글로써 정보를 전하는 쉬운 정보의 특성상 글을 읽고 이해하는 기본적인 문해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보를 보고 선택해서 내 삶에 적용하는 것에 대한 경험과 공감이 전제되어야 하며, 어려운 것을 어렵다고 솔직히 표현할 수 있는 언어적·비언어적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한다. 그밖에 더 자세한 이야기는 쉬운 정보 제작에 대해서 다룰 때 다시 이야기하겠다.

감수 활동에서 자기옹호에 이르기까지

쉬운 정보는 단순히 ‘앎’에서 그치지 않고 ‘삶’의 변화를 이끄는 매개가 된다. 소소한소통에서 가장 오랜 기간 감수위원으로 활동한 한 발달장애인은 어느덧 함께 한 햇수가 4년이 되었다. 그는 앞서 언급한 고객 간담회 참석에서부터 함께 한 당사자로 최초 고객 간담회 때에는 그렇게 많은 의견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쉬운 정보 감수활동을 꾸준히 해오면서 여러 가지 주제와 내용의 쉬운 정보를 접하는 경험이 쌓이게 되었고, 그중 스스로 자신의 삶에 더 필요한 내용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쉬운 정보의 유용함을 직접 체험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인 경험이 확장되었다.

지금은 쉬운 정보의 필요성에 누구보다 공감하며, 자신의 관점 외에도 동료 발달장애인의 입장에서 감수 의견을 덧붙인다. 또한 쉬운 정보가 필요한 주제, 형식 등을 먼저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아주 귀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

감수를 위해 시작한 활동이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적절한 방식으로 요구하는 자기옹호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며, 쉬운 정보가 왜 발달장애인의 삶에 권리로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자신의 삶을 더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요구하는 것이야 말로 자기옹호의 기본이자 지향점이 아닐까?
 
감수위원 SNS 연락 캡처 이미지. ⓒ소소한소통에이블포토로 보기 감수위원 SNS 연락 캡처 이미지. ⓒ소소한소통
[발달장애인 독자를 위한 쉽게 쓴 칼럼 - easy read version]
- 쉽게 쓴 칼럼에는 위의 칼럼 내용을 쉽게 풀어서 쓴 내용 외에, 발달장애인인 독자 입장에서 알아두면 좋을 내용이 함께 포함되었습니다.


쉬운 정보를 만들 때 발달장애인의 참여가 중요합니다.
-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정보는 발달장애인의 참여로 만들어져야 한다!

먼저 발달장애인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2017년 2월에 쉬운 정보를 만드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회사를 만들자마자 가장 처음 한 일은 발달장애인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친하게 지낸 발달장애인 10명에게 연락을 하여 회의를 열었습니다.

회의 이름은 고객 간담회 “소소한소통에게 바란다”였어요. 떨리는 마음으로 쉬운 정보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어떤 내용의 쉬운 정보가 필요한 지 물어봤습니다. 많은 의견이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아서 당황했습니다.

‘발달장애인에게 쉬운 정보가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잘못되었나? 아니면 열심히 해보고 싶은 나의 마음이 안 느껴지나?’

여러 가지 고민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바꾸어서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백정연 : 주말에 주로 뭐 하며 보내시나요?
참석자 1 : 영화 보러 가곤 해요.
백정연 : 보통 누구랑 보시나요?
참석자 1 : 자조모임에서 같이 갑니다.
백정연 : 혼자 가거나, 친구랑 가본 적은 없으세요?
참석자 1 : 영화표 끊어본 적 없어요. 해보려고 했는데 어려웠어요.
백정연 : 영화표 예매하는 방법을 쉽게 알려드리면 어떨까요?
참석자 1 : 쉽게요? 그럼 그걸 보고 직접 한번 해보고 싶네요.

평소에 일상을 어떻게 보내는지 물어보니, 반응이 달랐습니다. 여러 가지 대화들이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어떤 것이 불편했고, 또 어떤 것이 필요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복지관 프로그램 내용이 너무 어렵다.”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채용 모집 내용을 봤는데 잘 모르겠더라.”
“세탁기 사용법을 엄마한테 듣고 혼자 해보려니 막막했다. 설명서가 쉬우면 좋겠다.”
“집에서 내가 혼자 요리 해 먹게 요리법을 쉽게 알려주면 좋겠다.”
“페이스북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인터넷 쇼핑을 가끔 하는데, 광고가 어렵다. 어떤 제품인지 좀 쉽게 알려주면 좋겠다.”

역시 저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발달장애인에게 쉬운 정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때부터 새로운 내용의 쉬운 정보를 만들 때는 언제나 발달장애인의 의견을 듣는 일을 가장 먼저 합니다.

쉬운 정보가 정말 쉬운지는 발달장애인이 확인합니다

쉬운 정보를 만드는 일은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과정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하죠. 그 중에서도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을 듣는 일은 정말 중요합니다.

의견을 듣는 과정을 ‘감수’를 받는다고 하는데요. 글이 쉬운지, 함께 들어간 사진이나 삽화가 잘 이해되는 지 등의 의견을 듣는 시간입니다. 감수 과정을 통해 어려운 표현이 없는지 한 번 더 확인한 다음 더 쉽게 바꿀 수 있습니다.

감수를 받다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중요한 의견을 주는 발달장애인이 많습니다. 이러한 의견들이 모여서 실제로 발달장애인에게 필요한 정보가 만들어지게 되는 거죠!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의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 보다 오래전부터 발달장애인을 위해 쉬운 정보를 만들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쉬운 정보를 만들 때 발달장애인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발달장애인은 쉬운 정보를 직접 활용할 사람이기도 하고, 감수할 때직접 경험한 것에 대해 의견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쉬운 정보 만들 때 발달장애인은 전문가로서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발달장애인이 감수에 참여하기는 어렵습니다. 쉬운 정보는 글로 되어 있기 때문에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한 쉬운 정보를 보고 “내가 한번 참여해보고 싶다”라는 관심도 있어야 하고, 어려운 걸 어렵다고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더 자세한 것은 나중에 칼럼에서 또 이야기 할 예정입니다.

감수를 통해서 원하는 것을 스스로 요구하는 힘이 생깁니다

쉬운 정보를 통해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것을 직접 해보게 되는 것이죠! 다양한 경험을 하며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일은 내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듭니다.

소소한소통에서 감수활동을 4년 넘게 하고 있는 발달장애인이 있습니다.
그 분도 맨 처음 고객간담회에 왔을 때에는 많은 의견을 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감수에 참여하다보니 쉬운 정보를 많이 보게 되고, 쉬운 정보를 통해 처음 알게 된 것을 실제 직접 해보기도 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특히 지금은 자신의 의견 말고도, 다른 동료 발달장애인을 생각해서 의견을 주기도 하고요. ‘이런 것이 필요하니 만들어 달라!’ 요구를 하기도 합니다. 대단한 역할을 하고 있죠.

나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요구하는 모습을 보며, 발달장애인에게는 쉬운 정보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내가 필요한 걸 요구하는 것! 우리 모두가 원하는 삶 아닐까요?

어려운 정보를 쉽게 바꾸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발달장애인의 권리라는 것을 지난번 칼럼에서 말씀 드렸습니다. 그렇게 요구하다 보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되고, 나아가 더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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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백정연 (whitejy8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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