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 하동 지적장애인 가족, 노동 착취 알고도 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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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남장가센터 조회 407회 작성일 21-12-29 14:24본문
뇌병변장애인 아내 방임 정황
농장주에게 피해자 임금 받아
부정수급 횡령 혐의 등 수사중
"중증장애 따른 고립 고려해야"
하동 농장에서 34년간 노동력을 착취당한 지적장애인의 아내가 이를 사실상 방치한 정황이 확인됐다. 최근 몇 년 동안 수차례 실태조사가 있었지만 이번 사건을 파악할 수 없었던 이유도 드러났다. 장애인 단체들은 지자체·관계기관 긴밀한 협조 속에 철저한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가족 방임 정황 드러나 = 최근 하동에서 지적장애인이 34년간 노동력을 착취당한 사건이 드러났다. 이 사실은 경찰이 실종된 피해자를 찾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이 장애인 주민등록 소재지는 부산이고, 뇌병변장애인 아내와 자녀 역시 부산에 거주한다. 그런데 경찰과 경남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아내 ㄱ 씨를 청취조사하는 과정에서 피해 장애인이 가족 내 방임된 정황까지 확인됐다.
피해자와 ㄱ 씨 부부는 본래 하동에 함께 거주했다. 피해자는 당시부터 농장에서 일했지만, 가족과 함께 부산에 이주했다. 지적장애인인 피해자는 새 환경에서 생계를 꾸릴 수 없었고, ㄱ 씨는 남편을 다시 하동으로 보냈다. 이 과정에서 ㄱ 씨와 농장주는 피해자가 15년 동안 농장에서 일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고, 피해자 의사는 반영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ㄱ 씨는 농장주가 남편을 착취한 사실을 알면서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피해자 임금을 생활비· 양육비 등으로 썼고, 2005년께 피해자가 노동 중 크게 다쳤을 때는 농장주에게서 거액의 합의금도 받았다. 그럼에도, 피해자가 집에 오는 일은 꺼려, 34년간 가족 간 교류는 전혀 없었다. 이 때문에 자녀들도 아버지 존재를 잊고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부부는 부산시에서 생계급여와 장애연금을 받고 있는데, ㄱ 씨는 담당공무원에게 남편의 노동 사실을 밝히지 않아 행정이 문제를 미리 파악할 수도 없었다.
송정문 경남장애인권익옹호기관장은 "ㄱ 씨는 장애인복지법상 보호 의무가 있는 사람으로, 방임 정황이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에 경찰 고발을 검토 중"이라면서도 "문제의 근본 원인은 중증장애인들이 사회적으로 철저히 고립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뇌병변 장애인인 ㄱ 씨 역시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사회성을 거의 키우지 못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방임을 저지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삼 하동경찰서 형사팀장은 "노동력 착취 외 방임·부정수급 횡령 혐의 역시 다각적으로 살피며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사각지대 어떻게 메울까 =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남지부 등 장애인단체는 성명을 내고, "1년 전 통영 섬마을 노동력 착취 사건 이후 경남도 차원에서 전수조사를 진행했지만 다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라며 "행정 편의적으로 접근해 축소·은폐할 게 아니라 장애인 관련기관과 긴밀히 협조해 문제를 해결하라"라고 촉구했다.
경남도도 손놓고 있지는 않았다. 지난해 도내 어선·선단·해상가두리양식장을 모두 점검했고, 정신·발달장애인 2만 5000여 명을 전수 조사했다. 올해도 경남발달장애지원센터·경남장애인가족지원센터가 발달장애인 위기가정 3000여 곳, 경남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뇌병변·정신장애인 1인 가정 500여 곳을 각각 실태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이번 일은 파악할 수 없었다. 행정복지센터·면사무소 등이 평소 파악하고 있는 위기가정들이 조사 대상인데, 피해자 주소지는 부산이어서다. 경남에 주소를 두고 있었다고 해도, 사업주가 마음먹고 착취 사실을 숨긴다면 찾아낼 방법이 없다.
감금·폭행 등 직접 드러나는 정황이 없으면 인근 주민 신고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은 "행정기관 정보에 의존하는 기존 방식이 아닌 농장·축사·화훼단지 등 사업장별로 면밀하게 조사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경남도가 대대적인 실태조사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사각지대는 생길 수밖에 없다. 공무원은 수사권이 없어 농장주가 거부하면 조사를 강행할 수 없어서다.
송 기관장은 "경남도는 전국 최초로 정기적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고, 성과도 있다"라며 "이번 일로 그동안 다진 기반이 무너지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도내 장애인 관련 기관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피해자가 당장 갈 곳이 없는 상황에 놓여서다. 가족 방임 정황이 드러나면서 가정으로 돌려보낼 수도 없고, 도내에 남성이 갈 수 있는 학대피해장애인쉼터도 없다. 피해자는 현재 농장 인근 거처에서 임시로 머무르고 있다.
경남장애인옹호기관은 하동 한 임시보호 거주시설을 거쳐 자립 훈련을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경남발달장애인지원센터, 경남장애인가족지원센터 역시 사례 회의를 준비 중이다. 서은경 경남장애인가족지원센터장은 "피해자가 결국 장애인보호시설로 가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라며 "이 장애인이 본인의 의지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관련 기관들이 함께 장기적 지원 방안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